나바론
나바론 (Navarone) · 1980 · Na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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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의 오락실 슈팅은 대부분 좌우로만 움직였습니다. 화면 아래에 붙어 옆으로 움직이며 위를 향해 쏘는 것이 그때의 표준이었습니다. 나바론은 그 표준에서 한 발 벗어난 게임입니다. 플레이어의 기체가 화면 안을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그 덕에 어디를 먼저 칠지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이것만으로도 다른 게임이 되었습니다.
나바론(Navarone)은 남코가 1980년에 내놓은 흑백 화면의 슈팅 게임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플레이어는 화면 안을 움직이면서 배치된 목표물을 하나씩 쏘아 없앱니다. 화면에는 점처럼 생긴 목표와 폭탄, 그리고 총을 쏘는 포탑이 섞여 있습니다. 점과 폭탄은 부술 수 있지만 포탑은 부술 수 없고, 그 포탑이 쏘는 총알을 피하면서 나머지를 정리해 나가는 것이 한 판의 목표입니다. 게임 이름은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소설과 그것을 옮긴 영화에서 따온 것으로, 절벽 위 요새의 거대한 포를 무력화한다는 그 이야기의 구도가 게임의 뼈대에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폭탄을 이어 터뜨리는 재미
이 게임의 핵심은 폭탄에 있습니다. 점을 쏘면 그 점 하나만 사라지지만, 폭탄을 쏘면 터지면서 주변에 있는 점과 폭탄까지 함께 없앱니다. 그 폭발에 다른 폭탄이 휘말리면 그것도 터지고, 연쇄가 계속 이어집니다. 화면 한구석에 총알 한 발을 잘 넣어서 절반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장면이 나오면 그 판은 훨씬 수월해집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잘하는 방법은 사격 실력이 아니라 순서를 정하는 일입니다. 화면에 배치된 목표들을 보고, 어느 폭탄을 먼저 치면 가장 많이 연쇄가 일어날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아무 데나 쏘아 점을 하나씩 지우다 보면 폭탄이 흩어져 버려서 연쇄가 안 나오고, 그만큼 화면 안에 오래 머물러야 하니 포탑의 총알을 맞을 위험도 커집니다.
반대로 위험한 상황에서는 연쇄를 포기하는 판단도 필요합니다. 포탑의 사선 안에 오래 머무르면서 좋은 각도를 기다리다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안전한 자리에서 칠 수 있는 것부터 치우고, 여유가 생기면 그때 큰 연쇄를 노리는 배분이 안정적입니다.
부술 수 없는 적이라는 규칙
포탑을 부술 수 없다는 규칙은 이 게임의 긴장을 만드는 장치입니다. 슈팅 게임에서 화면에 있는 것을 다 없앨 수 있다면 결국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그런데 절대 없앨 수 없는 위협이 화면에 고정되어 있으면, 플레이어는 그것을 계속 의식하면서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이동은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사선을 피해 가는 것에 가깝습니다. 포탑이 쏘는 방향을 파악하고, 그 선 위에 서지 않는 경로로 돌아서 목표에 접근해야 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은 목표만 보고 직선으로 가다가 포탑의 총알에 맞습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사선 바깥으로 움직이는 습관을 들이면 생존 시간이 눈에 띄게 길어집니다.
포탑이 여러 개 있을 때는 그 사선들이 겹치는 자리와 겹치지 않는 자리가 생깁니다. 겹치지 않는 안전 지대를 찾아 그곳을 거점으로 삼고 조금씩 목표를 줄여 나가는 것이 이 게임의 정석에 가깝습니다.
남코의 1980년
이 게임이 나온 1980년은 남코에게 특별한 해입니다. 같은 해에 팩맨이 나왔고, 그 게임이 오락실이라는 공간의 성격을 바꿔 놓게 됩니다. 나바론은 그보다 앞선 시기에, 아직 남코가 여러 방향을 시험해 보던 시절에 나온 작품입니다. 화면은 흑백이고, 기판도 남코가 앞서 만든 게임에 쓰던 것을 이어 쓴 구성입니다.
이 시기 남코가 내놓은 흑백 게임 몇 편은 지금 보면 실험작에 가깝습니다.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슈팅, 연쇄 폭발이라는 규칙, 부술 수 없는 고정 위협 같은 요소들은 이후 여러 게임에서 다시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한 회사가 색깔을 정하기 전에 여러 규칙을 하나씩 시험해 보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1980년이면 국내 오락실 문화가 아직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전입니다. 이 시기의 흑백 게임들은 국내에 들어오더라도 극히 일부였고, 몇 해 지나 컬러 화면의 인기작들이 쏟아지면서 빠르게 밀려났습니다. 나바론도 국내에서 널리 알려진 게임이 아니어서 따로 붙은 별명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 게임을 지금 해 볼 이유는 있습니다. 규칙이 몇 개 되지 않는데도 판마다 다른 판단을 요구하는 구조는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습니다. 흑백 화면에 점과 폭탄만 놓여 있는데, 어디를 먼저 칠지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초기 아케이드 게임들이 어떻게 적은 재료로 재미를 만들어 냈는지 확인하기에 좋은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