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마스터
던전 마스터 (Dungeon Master) · 1986 · ASC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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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X에서 셋이 함께 던전에 들어가다
1986년에 나온 MSX 게임이 세 명 동시 플레이를 지원했습니다. 1번은 키보드를 쓰고, 2번과 3번은 조이스틱 두 개를 나눠 씁니다. 한 대의 컴퓨터 앞에 셋이 붙어 앉아 같은 던전을 함께 기어 다니는 구성입니다. 이 시기 8비트 컴퓨터 게임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설계입니다.
같이 하는 롤플레잉이라는 발상 자체가 흔치 않았습니다. 이 시절 컴퓨터 롤플레잉은 혼자 지도를 그려 가며 며칠씩 붙잡는 물건이었고, 여럿이 동시에 조작하는 것은 액션 게임의 영역이었습니다. 두 가지를 한 화면에 겹쳐 놓은 것이 이 게임의 출발점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던전 마스터(Dungeon Master)는 던전을 내려가며 싸우고 성장하는 액션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이름이 같은 유명한 서양 게임이 이듬해에 나오지만 전혀 다른 물건이고, 이쪽이 한 해 먼저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면에서 직접 캐릭터를 움직여 싸우고, 층을 내려가며 목표를 찾습니다.
직업은 넷 중에서 고릅니다. 전사, 승려, 도적, 마법사입니다. 다만 이 게임에서 실제 전투력을 좌우하는 것은 직업 자체보다 무엇을 장비했는가입니다. 좋은 무기와 방어구를 손에 넣으면 어떤 직업이든 싸울 만해지고, 반대로 맨몸이면 무엇을 골랐든 위험합니다. 직업의 차이는 쓸 수 있는 능력 쪽에서 더 크게 드러납니다.
여관이 거점 역할을 합니다. 회복도 하고, 성장도 처리하고, 짐도 맡깁니다. 던전에 들고 들어갈 수 있는 물건 수가 제한돼 있으므로,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두고 갈지가 매번 고민거리가 됩니다. 진행 상황은 암호로 남깁니다. 저장 장치가 귀하던 시절의 표준적인 방식입니다.
막히는 지점과 요령
첫 번째 벽은 소지품 칸입니다.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이 몇 개뿐이라, 욕심내서 다 챙기면 정작 필요한 회복 수단을 못 들고 갑니다. 내려가기 전에 이번에 무엇을 하러 가는지 정하고 거기에 맞춰 짐을 꾸리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애매하게 다 조금씩 챙기는 것이 가장 나쁜 선택입니다.
두 번째는 방마다 내용물이 매번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같은 방에 다시 들어가면 아까와 다른 것이 나옵니다. 그러니 한 번 지나쳤다고 그 방을 영영 포기할 필요가 없고, 반대로 아까 좋았다고 같은 방을 다시 믿으면 안 됩니다. 이 구조 덕분에 안 풀릴 때는 왔던 길을 되짚어 다시 도는 것이 유효한 전략이 됩니다.
세 번째는 무리한 하강입니다. 층이 깊어질수록 적이 세지는데, 장비와 성장이 따라가지 못한 상태로 내려가면 회복 수단만 소모하다 돌아오게 됩니다. 한 층에서 충분히 챙긴 다음 내려가는 편이 결국 빠릅니다. 셋이 함께 할 때는 이 판단을 서로 다르게 내리면서 다투게 되는데, 그 실랑이 자체가 이 게임의 재미이기도 합니다.
여럿이 할 때의 요령
동시 플레이가 되는 만큼, 흩어질지 뭉칠지가 매번 문제가 됩니다. 흩어지면 탐색은 빠르지만 한 명이 몰리면 도와줄 수 없습니다. 익숙해지기 전에는 붙어 다니는 편이 안전합니다. 특히 회복 수단을 한 사람이 몰아 들고 있으면 그 사람이 무리에서 떨어지는 순간 나머지가 곤란해집니다.
직업 조합도 생각할 거리입니다. 앞에서 맞아 주는 역할과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나눠 두면 훨씬 안정적으로 굴러갑니다. 셋이 다 같은 방식으로 싸우면 초반에는 시원하지만 깊은 층에서 버티지 못합니다.
국내에서의 자리
한국의 MSX 사용자들 사이에서 이 게임은 나름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정식 유통 경로가 아니라 복사 카트리지와 복사 디스크를 통해 손에서 손으로 건너간 쪽이지만, 여럿이 같이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친구를 불러 놓고 하던 기억으로 남은 경우가 있습니다. 조이스틱 두 개를 갖춘 집이 흔치는 않았으므로, 그것이 있는 집에 모이는 식이었습니다.
일본어를 읽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진행에 벽은 있었지만, 던전을 돌고 싸우는 부분은 글자를 몰라도 손으로 알 수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그것이 이 게임이 국내에서 살아남은 방식입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대신, 셋이 모여 한 층씩 내려가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