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바스테이터즈
데바스테이터즈 (Devastators Ver Z) · 1988 · Kon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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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안쪽으로 달려 들어가는 전쟁
옛날 오락실 슈팅은 대개 옆이나 위로 흘렀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화면 안쪽, 그러니까 플레이어의 등 뒤에서 저 멀리를 향해 진격합니다. 병사의 뒷모습을 보며 앞으로 달려 나가면 저 멀리 점처럼 보이던 적이 점점 커지면서 다가오고, 어느 순간 눈앞까지 와서 총을 들이댑니다. 원근이 살아 있는 화면 덕분에, 다른 슈팅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압박감이 있습니다.
데바스테이터즈(Devastators)는 코나미가 만든 3인칭 시점의 진격형 슈팅입니다. 플레이어는 총을 든 병사가 되어 전장을 앞으로 밀고 나가며, 몰려오는 적병과 차량, 구간 끝을 지키는 대형 병기를 상대합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붙어 함께 진격할 수 있고, 체력 개념이 있어 한 대 맞았다고 곧바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엄폐가 절반입니다
이 게임의 핵심은 몸을 숨기는 것입니다. 전장 곳곳에 담벼락과 상자, 드럼통 같은 엄폐물이 놓여 있고, 그 뒤에 몸을 낮추면 적의 사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총을 쏘려면 몸을 일으켜야 하고, 일어나 있는 동안은 맞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계속 쏘는 게임이 아니라, 숨고 일어나 쏘고 다시 숨는 리듬을 만드는 게임입니다.
엄폐물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적의 사격을 계속 받으면 부서져 사라지므로, 한 자리에 오래 눌러앉아 있으면 결국 맨몸으로 남습니다. 엄폐물이 부서지기 전에 다음 엄폐물로 옮겨 가는 판단이 필요하고, 이 이동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 초보자가 가장 많이 죽는 이유입니다.
수류탄을 아끼지 마십시오
총 말고 수류탄이 있습니다. 총알이 직선으로 나가는 것과 달리 수류탄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터지므로, 엄폐물 뒤에 숨은 적이나 멀리 뭉쳐 있는 무리를 한 번에 정리할 수 있습니다. 총으로는 손대기 어려운 상황이 수류탄 한 발로 풀리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초보자는 대개 수류탄을 아끼다가 죽습니다. 나중에 쓰겠다고 들고만 있으면 정작 위험한 순간에 던질 여유가 없습니다. 적이 여럿 뭉쳐 나오는 구간이 보이면 아끼지 말고 먼저 던져 수를 줄여 놓는 편이 결과적으로 훨씬 오래 버팁니다. 던지는 거리 조절에 익숙해지면 이 게임의 난이도가 눈에 띄게 내려갑니다.
2인 협력이 만드는 차이
혼자 할 때와 둘이 할 때의 체감 난이도가 크게 다릅니다. 혼자면 정면과 측면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지만, 둘이면 한 사람이 정면을 붙잡고 다른 사람이 옆에서 들어오는 적을 끊어 줄 수 있습니다. 좌우로 넓게 벌려 서로의 사각을 메워 주는 것이 이 게임의 기본 협력 방식입니다.
반대로 둘이 붙어 서 있으면 최악입니다. 폭발 하나에 둘 다 휘말리고, 같은 엄폐물을 나눠 쓰다가 함께 무너집니다. 화면 좌우로 충분히 벌려 놓고 각자 자기 쪽을 책임지는 것만 지켜도 진도가 훨씬 잘 나갑니다.
콘트라를 만들던 시절의 코나미
이 게임이 나온 1988년 전후는 코나미가 오락실에서 가장 왕성하게 이름을 알리던 시기입니다. 정면으로 뛰고 쏘는 액션, 화면 안쪽으로 들어가는 시점, 우주를 배경으로 한 횡스크롤 슈팅까지, 같은 시기에 서로 다른 형태의 액션을 동시에 내놓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중에서 진격 시점을 가장 본격적으로 밀어붙인 축에 듭니다.
당시 오락실에는 화면 안쪽으로 쏘는 형태의 게임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조준점을 움직여 쏘는 방식도 있었고, 이 게임처럼 병사를 직접 움직여 몸으로 피하는 방식도 있었습니다. 후자는 손이 더 많이 가는 대신 몰입감이 확실히 컸고, 특히 엄폐물을 끼고 눈치 싸움을 벌이는 감각은 이쪽에서만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국내 오락실에서 이런 진격형 슈팅은 2인용으로 붙어 앉기에 아주 좋은 게임이었습니다. 서로 방향을 나눠 맡고, 수류탄을 언제 던질지 소리쳐 알려 주며 진행하다 보면 한 판이 금세 지나갔습니다. 체력이 있어서 한 방에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100원의 값어치를 크게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조작은 단순하지만 요구하는 판단은 분명합니다. 어디에 숨을지, 언제 일어설지, 수류탄을 어디에 던질지 이 세 가지만 정리되면 진도가 확 달라집니다. 화면 안쪽으로 들어가는 시점이 어떤 긴장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그 시절 코나미다운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