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KSILGAME

디 엔드

디 엔드 (The End) · 1980 · Konami

방향버튼ASZX보조QERT동전Shift시작Enter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코나미가 아직 코나미가 아니던 때

지금 코나미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그라디우스나 콘트라, 혹은 실황 야구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 게임이 나온 1980년의 코나미는 그런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오락실 기판 시장에 막 발을 들여놓은 여러 회사 중 하나였고, 이름만으로 손님을 끌 수 있는 단계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 시기는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일으킨 열풍이 아직 식지 않았을 때입니다. 화면 아래에 내 기체가 있고, 위에서 적이 내려오고, 총알을 쏘아 맞히는 구조. 그 틀을 따라 만든 게임이 수없이 쏟아졌고, 대부분은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살아남으려면 그 틀 안에서 뭐라도 하나 다르게 해야 했습니다.

디 엔드 슈팅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0)

어떤 게임인가

디 엔드(The End)는 화면이 스크롤되지 않는 고정 화면 슈팅입니다. 내 기체는 화면 아래쪽에서 좌우로만 움직이고, 버튼을 누르면 위로 총알이 나갑니다. 위쪽에는 적이 무리를 지어 자리를 잡고 있고, 그중 일부가 아래로 내려오며 공격해 옵니다. 조작은 레버 좌우와 버튼 하나, 그게 전부입니다.

이 게임을 다른 인베이더 아류작과 갈라놓는 것은 화면 위쪽에 쌓여 있는 벽돌 구조물입니다. 적들은 나를 공격하는 것 못지않게 이 벽돌을 하나씩 떼어 나르는 데 열심입니다. 그리고 그 벽돌이 어떤 모양으로 사라지느냐가 이 게임의 승패를 가릅니다.

디 엔드 슈팅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0)

벽돌을 지킨다는 발상

보통의 슈팅에서 플레이어가 신경 쓸 것은 두 가지입니다. 적을 맞히는 것과 총알을 피하는 것. 그런데 이 게임은 거기에 세 번째를 얹었습니다. 지켜야 할 구조물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적을 쏘는 데만 집중하면 그동안 구조물이 야금야금 무너집니다. 반대로 구조물을 노리는 적만 쫓아다니면 내 발밑으로 떨어지는 총알을 못 피합니다. 한정된 시간과 한 발의 사격을 어디에 쓸 것인가, 이 선택을 계속 강요당하는 것이 이 게임의 긴장감입니다.

1980년 기준으로 이건 꽤 영리한 설계였습니다. 화면에 그릴 수 있는 것도, 한 번에 움직일 수 있는 물체 수도 지금과 비교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시절입니다. 새로운 그래픽이나 화려한 효과로 차별화할 방법이 없으니, 규칙 하나를 바꿔서 완전히 다른 판단을 요구하게 만든 것입니다.

디 엔드 슈팅 게임 화면 3 - 오락실 (1980)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요즘 게임에 익숙한 사람이 이런 초창기 슈팅을 잡으면 대개 너무 빨리 죽습니다. 이유는 대부분 같습니다. 계속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슈팅에서는 끊임없이 위치를 바꾸는 것이 기본이지만, 고정 화면 슈팅은 다릅니다. 적의 이동 패턴이 정해져 있고 총알도 그리 빠르지 않아서, 오히려 한 자리에 서서 적이 사거리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편이 유리한 순간이 많습니다. 움직여야 할 때와 버텨야 할 때를 구분하는 감각이 붙기 전까지가 고비입니다.

또 하나는 총알 관리입니다. 이 시기 슈팅은 화면에 내 총알이 하나만 존재할 수 있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쏜 총알이 화면 위로 사라지거나 무언가에 맞기 전까지는 다음 발이 나가지 않습니다. 버튼을 연타하는 습관이 있으면 정작 필요한 순간에 총알이 없습니다. 한 발을 아껴서 확실할 때 쏘는 것이 이 시절 슈팅의 기본기입니다.

이런 게임을 지금 왜 해 보나

솔직히 말해 1980년의 게임은 지금 기준으로 볼거리가 거의 없습니다. 색은 몇 가지 안 되고, 소리는 전자음 몇 개가 전부입니다. 한 판을 오래 붙잡고 있을 만한 깊이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게임을 한 번쯤 켜 볼 만한 이유는, 나중에 우리가 아는 모든 게임이 여기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지키면서 싸운다는 구조 하나만 해도 이후 수십 년 동안 온갖 장르에서 변주됩니다. 그 원형을 가장 단순한 형태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초창기 게임의 재미입니다.

국내 오락실에는 이 게임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1980년이면 한국에서 오락실 문화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조금 전이고, 그때 깔린 기판은 훨씬 뒤에 나온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추억으로 만나는 게임이라기보다, 뒤늦게 찾아보는 역사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