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 앤 체이스
락 앤 체이스 (Lock N Chase Deco Cassette Us) · 1981 · Data East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팩맨이 유령에게 쫓기던 시절, 데이터 이스트는 조금 다른 답을 내놓았습니다. 쫓기는 건 똑같은데, 이쪽 주인공은 도둑이고 뒤쫓는 것은 경찰이며, 궁지에 몰렸을 때 쓸 수 있는 수단이 파워 아이템이 아니라 문입니다. 통로 위에 문을 내려 닫아 경찰의 길을 끊어 버리는 것. 이 한 가지 장치가 미로 게임의 성격을 통째로 바꿔 놓았습니다.
금화를 쓸어 담고 도망치는 미로
락 앤 체이스(Lock 'n' Chase)는 미로 안을 돌아다니며 바닥에 깔린 금화를 모두 줍는 게임입니다. 주인공은 루팡이라는 이름의 도둑이고, 미로 안에는 네 명의 경찰이 그를 쫓아다닙니다. 금화를 다 주우면 그 판이 끝나고 다음 미로로 넘어갑니다.
큰 틀은 팩맨과 같습니다. 점을 다 먹으면 넘어가고, 쫓아오는 것들에게 닿으면 죽습니다. 다른 점은 반격 방식입니다. 팩맨에서는 파워 알약을 먹고 유령을 잡아먹지만, 이 게임에는 그런 역전 수단이 없습니다. 대신 미로 곳곳에 문이 있고, 버튼을 눌러 그 문을 닫을 수 있습니다.
문을 닫는다는 것
문은 닫혀 있으면 통로를 완전히 막습니다. 경찰이 쫓아오는 길목의 문을 닫으면 그 경찰은 돌아가야 합니다. 잘 쓰면 여러 명을 한꺼번에 다른 구역에 가둬 놓고 그동안 편하게 금화를 쓸어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은 나에게도 벽입니다. 급하게 닫고 나서 정작 내 도망길이 그 문 너머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이 게임의 실수는 대부분 여기서 나옵니다. 문을 닫기 전에 내가 빠져나갈 길이 어느 쪽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문은 또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열립니다. 영구적인 방벽이 아니라 잠깐 벌어 주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문 하나로 안심하지 말고,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할지를 미리 정해 두어야 합니다. 근처 금화를 몰아서 줍든, 안전한 구역으로 자리를 옮기든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것
첫 번째 요령은 금화를 무작정 가까운 것부터 줍지 않는 것입니다. 미로 게임의 실패는 대개 마지막에 남은 몇 개를 줍겠다고 위험한 구석으로 들어갔다가 나옵니다. 가급적 막다른 구역의 금화를 초반에, 아직 경찰이 흩어져 있을 때 먼저 정리하는 편이 좋습니다.
두 번째는 경찰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네 명이 똑같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곧장 달려드는 쪽이 있고, 앞을 막으려 도는 쪽이 있으며, 엉뚱하게 헤매는 쪽도 있습니다. 지금 나를 압박하는 게 어느 유형인지 알면 대응이 달라집니다. 곧장 오는 쪽은 문으로 끊기 쉽고, 돌아서 막는 쪽은 방향을 바꿔 흘려보내는 편이 낫습니다.
세 번째는 코너입니다. 미로 게임에서 죽는 자리는 대개 갈림길이 아니라 막다른 골목입니다. 이동 중에는 항상 지금 있는 통로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향이 최소한 둘은 되도록 신경 쓰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데코 카세트 시절의 데이터 이스트
이 게임은 데이터 이스트의 데코 카세트 시스템 기판에서 돌아갔습니다. 기판을 통째로 갈지 않고 테이프에 담긴 게임 데이터를 갈아 끼우는 방식이라, 업소가 새 게임을 들이는 비용을 크게 줄여 주었습니다. 데이터 이스트는 이 방식으로 1980년대 초반에 여러 게임을 빠르게 내보냈고, 이 작품은 그중 가장 성공한 축에 듭니다.
북미에서는 타이토가 유통을 맡았고, 인기에 힘입어 가정용 기기로도 여러 차례 옮겨졌습니다. 훗날 게임보이용으로 다시 만들어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름 있는 미로 게임이 팩맨 하나로 기억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 옆에서 나름의 규칙을 세워 오래 살아남은 게임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한국에서 이 게임을 원래 이름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80년대 초 국내 오락실에는 미로 게임 자리가 이미 팩맨 계열 복제 기판으로 채워져 있었고, 그 밖의 미로 게임은 들어와도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 게임의 구조는 지금 처음 잡아도 5분이면 익숙해집니다. 금화를 줍고, 쫓기고, 문을 닫아 시간을 벌고, 다시 줍습니다. 규칙이 적은 게임일수록 오래 남는다는 걸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팩맨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문 하나가 만들어 내는 차이를 꼭 한 번 느껴 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