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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포스

건락 (Gunlock Ver 2 3o 1994 01 20) · 1993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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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 슈팅에서 화면은 평면입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적을 아래에서 쏘아 올리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화면을 두 층으로 나눕니다. 내 기체와 같은 높이에 있는 적은 정면 샷으로 쏘고, 그보다 아래쪽 지상에 있는 적은 정면 샷이 닿지 않습니다. 아래층 적을 잡으려면 조준 커서를 그 위에 올려 표적으로 걸어 둔 다음, 버튼을 놓아 유도 레이저를 한꺼번에 떨어뜨려야 합니다. 이 하나의 아이디어가 게임 전체의 성격을 바꿔 놓습니다.

건락(Gunlock)은 타이토가 1993년에 내놓은 세로 스크롤 슈팅으로, 일본판 이름은 레이포스입니다. 국내 오락실 손님들과 슈팅을 즐기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레이포스라는 이름으로 통했습니다. 플레이어는 전투기 한 대를 몰고 위로 흘러가는 화면을 헤쳐 나가며, 앞서 말한 정면 샷과 록온 레이저 두 가지 수단을 상황에 따라 나눠 씁니다. 록온은 최대 여덟 대까지 한 번에 걸 수 있고, 한 번에 여러 대를 잡을수록 점수 배율이 크게 올라갑니다.

레이포스 슈팅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3)

록온이라는 도박

록온 레이저를 쓰는 방식이 이 게임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기체 앞의 커서가 적 위를 지나가며 표적을 하나씩 쌓고, 버튼을 놓는 순간 쌓인 만큼의 레이저가 날아갑니다. 문제는 표적을 쌓는 동안 정면 샷이 나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덟 대를 다 채우려고 버튼을 붙들고 있으면, 그 사이 같은 높이로 밀고 들어오는 적을 못 잡아 그대로 부딪히게 됩니다.

그래서 매 순간 선택이 생깁니다. 지금 록온을 더 쌓아 배율을 챙길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끊고 앞을 정리할 것인가. 점수를 크게 내려는 사람은 록온을 최대한 채우려 들고, 살아남는 것이 우선인 사람은 서너 대만 걸고 빨리 끊습니다. 같은 구간을 어떻게 넘어갈지가 사람마다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익숙해지면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지상 적이 몰려 있는 자리를 미리 알고, 그 자리에 도착하기 전에 커서를 훑을 경로를 정해 두는 식입니다. 커서는 기체를 움직여야 따라오므로, 록온을 채우는 동선과 총알을 피하는 동선을 같은 움직임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 둘을 한 번에 만족시키는 경로를 찾아 가는 것이 이 게임을 깊게 파는 재미입니다.

레이포스 슈팅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93)

층이 나뉜 화면을 읽는 법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겪는 일은 아래층 적을 계속 놓치는 것입니다. 정면 샷을 아무리 쏴도 지상 시설물이 안 부서지니 이 게임이 고장 난 줄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래층 적은 오직 록온으로만 잡을 수 있다는 규칙을 몸에 익히는 것이 첫 관문입니다.

두 번째 관문은 위험의 출처를 구분하는 일입니다. 같은 높이의 적이 쏘는 총알은 나를 맞힐 수 있지만, 아래층 지상 시설이 쏘는 것은 위로 올라오면서 같은 높이로 들어옵니다. 화면에 보이는 것 중 무엇이 지금 당장 위험하고 무엇이 아직 아래층에 있는지를 순간적으로 가려내야 합니다. 그래픽이 원근을 잘 표현해 놓아서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구분되지만, 초반에는 이것 때문에 이유를 모른 채 죽는 일이 잦습니다.

막히는 구간이 나오면 억지로 다 잡으려 하지 말고 안전한 라인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 낫습니다. 지상 적을 몇 개 흘려보내도 판은 진행됩니다. 점수는 살아남은 다음에 챙기면 됩니다.

보스전과 연출

이 게임의 보스들은 크고, 화면 구성을 적극적으로 씁니다. 아래층에 자리 잡고 록온으로만 부술 수 있는 부위를 가진 보스가 있는가 하면, 같은 높이로 올라와 정면 샷을 요구하는 보스도 있습니다. 두 가지 공격 수단을 다 익혔는지 시험하는 구성입니다.

보스전에서 흔히 하는 실수는 록온에 욕심을 내는 것입니다. 보스가 총알을 뿌리는 와중에 커서를 채우려고 버튼을 붙들고 있으면 피할 여유가 사라집니다. 보스전에서는 록온을 짧게 끊어 자주 쓰는 편이 안전합니다. 배율은 잡몹 구간에서 벌고, 보스에게는 확실하게 넣는 것이 기본 배분입니다.

연출도 이 게임이 오래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배경이 단순한 우주가 아니라 층층이 겹친 구조물로 그려지고, 스테이지가 넘어갈 때 시점이 아래로 파고들거나 위로 빠져나오면서 두 층 구조를 눈으로 확인시켜 줍니다. 음악도 이 게임의 평판에 큰 몫을 했습니다.

레이 시리즈 안에서

이 게임은 타이토가 이어 간 슈팅 계보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뒤로 이어지는 작품들에서 록온 개념은 계속 다듬어지지만, 두 층으로 나눈 화면과 록온을 이렇게 정면으로 게임의 중심에 놓은 것은 이 작품이 가장 선명합니다. 이후 작품들이 화면을 더 화려하게 채우고 연출을 키우는 방향으로 갔다면, 이 작품은 규칙 하나를 끝까지 밀어붙인 쪽에 가깝습니다.

기판은 타이토가 1990년대 중반 내내 쓴 F3 시스템입니다. 스프라이트를 많이, 크게 뿌리면서도 화면이 무너지지 않는 성능과 좋은 음원을 갖춘 기판이라 슈팅과 벨트 스크롤 액션 양쪽에서 여러 명작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게임의 겹겹이 쌓인 배경과 대형 보스도 그 성능 위에서 나온 것입니다.

국내 오락실에서의 기억

국내에서는 대체로 레이포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지역과 유통 경로에 따라 이름이 여럿이었던 탓에 같은 게임인 줄 모르고 다른 게임으로 알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세가 새턴으로 이식판이 나오면서 콘솔 쪽에서도 이름을 알렸고, 슈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꾸준히 좋은 평을 받아 왔습니다.

동네 오락실에서 이 게임이 놓인 자리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격투 게임이 기계 대수를 다 가져가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슈팅 코너가 따로 있던 큰 오락실에서는 꽤 오래 자리를 지켰고, 록온을 여덟 대 채워 한 번에 터뜨리는 장면 때문에 뒤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붙던 게임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