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오브 썬더
로드 오브 썬더 (Lords of Thunder) · 1993 · Hud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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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화면부터 기타가 울립니다
시디롬 게임기가 막 자리를 잡던 시절, 대부분의 게임은 늘어난 용량을 성우 목소리와 동영상에 썼습니다. 이 게임은 그 용량을 통째로 하드록 밴드 소리에 밀어 넣었습니다. 전원을 넣고 타이틀 화면이 뜨는 순간 디스토션이 걸린 기타 리프가 스피커를 때리는데, 가정용 기기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믿기 어려운 밀도였습니다.
음악이 좋은 슈팅은 많지만 이 게임은 음악이 곧 진행의 박자입니다. 스테이지마다 곡이 하나씩 붙고, 곡이 고조되는 지점과 적이 몰려오는 타이밍이 얼추 맞물립니다. 그래서 몇 번 돌리고 나면 소리만 듣고도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손이 먼저 움직이게 됩니다.
갑옷을 갈아입는 횡스크롤 슈팅
로드 오브 썬더(Lords of Thunder)는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한 횡스크롤 슈팅입니다. 조종하는 것은 전투기가 아니라 갑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주인공은 하늘을 날며 쉬지 않고 탄을 뿌리고, 적이 바짝 붙으면 검을 휘둘러 베어 냅니다. 화면은 기본적으로 옆으로 흐르지만 구간에 따라 위아래로도, 비스듬하게도 밀려갑니다.
한 판의 흐름은 단순합니다. 갈 곳을 고르고, 갑옷을 고르고, 상점에서 필요한 물건을 산 뒤 들어갑니다. 끝까지 밀어붙여 보스를 잡으면 다음 지역이 열립니다. 무대는 밀림, 눈 덮인 동굴, 사막, 물가, 절벽 요새, 화산처럼 색이 뚜렷하게 갈리는 곳들로 이어지고 그 뒤에 마지막 무대가 붙습니다.
네 벌의 갑옷이 만드는 네 가지 공략
불, 물, 바람, 흙 네 가지 갑옷이 있고 스테이지에 들어가기 전에 매번 다시 고를 수 있습니다. 속성 상성 같은 것은 없습니다. 대신 탄이 퍼지는 모양과 위력이 완전히 달라서, 사실상 난이도를 고르는 일에 가깝습니다.
물 갑옷은 기본 탄에 더해 파도 모양 에너지를 뿌리고, 최대까지 키우면 뒤쪽으로도 나갑니다. 등 뒤에 붙는 적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처음 잡는 사람에게는 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불 갑옷은 끝까지 키우면 화염방사기처럼 변해 위아래를 훑을 수 있고, 흙 갑옷은 아래쪽으로 큰 덩어리를 던져 지상 목표를 정리합니다. 바람 갑옷은 정면 집중형이라 보스전은 시원하지만 잡졸을 치우는 손이 바빠집니다.
무기 레벨은 맞을 때마다 깎입니다. 한 방에 죽지 않는 대신 얻어맞을수록 화력이 주저앉는 구조라, 몸으로 때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눈덩이처럼 불리해집니다.
기본 공격은 버튼을 누르고 있지 않아도 계속 나가기 때문에 손은 대체로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신경 쓸 것은 어디에 서 있느냐입니다. 적이 나오는 자리가 스테이지마다 정해져 있어서, 몇 번 해 보면 어느 높이에 붙어 있어야 안전하게 쓸어 담을 수 있는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 자리를 찾아내는 것이 이 게임의 공략입니다.
크리스털과 상점, 그리고 한 목숨의 무게
적을 부수면 크리스털이 떨어집니다. 이것이 돈입니다. 스테이지 사이 상점에서 폭탄, 체력 회복, 무기 강화, 탄을 튕겨 내는 보호막, 컨티뉴, 그리고 체력을 가득 채워 주는 비약을 삽니다. 무엇을 사 두었느냐가 다음 무대의 체감 난이도를 정해 버리기 때문에, 조작 실력만큼이나 장보기 감각이 중요합니다.
중간 부활 지점이 없다는 점은 미리 알아 두는 편이 좋습니다. 한 스테이지는 한 목숨으로 끝까지 가야 하고, 죽으면 그 스테이지의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앞부분에서 무기를 최대한 키워 두고 위험한 구간 직전까지 비약을 아껴 두는 식으로 판을 짜게 됩니다.
주인공이 웬만한 슈팅의 자기보다 훨씬 크다는 것도 변수입니다. 몸집이 큰 만큼 좁은 통로에서 지형과 적탄을 함께 피하기가 까다롭고, 난이도를 올리면 적이 죽으면서 탄을 뿌리기까지 합니다.
게이트 오브 썬더와 메가 시디판
이름이 비슷한 게이트 오브 썬더가 먼저 나왔지만, 그쪽은 우주 배경의 정통 슈팅이라 실제로 해 보면 완전히 다른 게임입니다. 이름값을 이어받은 자매작 정도로 보는 편이 맞습니다.
나중에 메가 시디로도 나왔습니다. 화면이 조금 어둡고 색이 덜 화사한 대신 맞았을 때 잠깐 경직이 생기고 전반적으로 난이도가 내려갔습니다. 음악은 같은 멜로디를 다시 편곡했는데 질감이 달라서, 어느 쪽 소리를 먼저 들었느냐에 따라 편이 갈립니다.
난이도는 시작할 때 세 단계 가운데 고를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단계에서는 적탄이 눈에 띄게 느리고 수도 적어서 스테이지 구조와 보스 패턴을 익히기에 좋습니다. 익숙해진 뒤 단계를 올리면 같은 구간이 전혀 다른 밀도로 다가옵니다. 여기에 갑옷 선택까지 겹치면 사실상 열두 가지 조합의 난이도가 생기는 셈이라, 자기 실력에 맞춰 조절할 여지가 넓습니다.
한국에서는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이 기기의 시디롬 확장은 국내에 정식으로 들어온 적이 거의 없습니다. 용산이나 세운상가를 드나들던 사람, 게임 잡지 지면으로 이름만 알던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실물을 만져 본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한참 뒤에 재평가된 축에 듭니다. 슈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명작 목록에 늘 오르는데, 직접 해 보면 그 평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됩니다. 조작이 단순하고 무대를 골라 들어갈 수 있어서, 슈팅에 익숙하지 않아도 처음 몇 판을 버티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