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러너
로드 러너 (Lode Runner SET 1) · 1984 · Ir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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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대신 삽을 든 주인공
적을 잡는 방법이 특이한 게임이 있습니다. 이 게임의 주인공은 무기가 없습니다. 대신 좌우 발밑의 바닥을 파낼 수 있습니다. 쫓아오는 적을 그 구멍으로 유인해 빠뜨리고, 그 위를 태연히 밟고 지나가는 것이 공격의 전부입니다. 구멍은 시간이 지나면 메워지는데, 그 안에 적이 갇힌 채로 메워지면 적은 사라졌다가 화면 위쪽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이 게임은 로드 러너(Lode Runner)입니다. 한 화면짜리 스테이지 안에 흩어진 금괴를 전부 모으면 사다리가 나타나고, 그 사다리를 타고 화면 맨 위로 올라가면 다음 판으로 넘어갑니다. 사다리로 오르내리고 밧줄에 매달려 옆으로 이동하며, 아래로는 그냥 떨어질 수 있지만 위로는 사다리 없이 올라갈 수 없습니다. 점프도 없습니다.
구멍 파기가 전부인 규칙
규칙이 이렇게 단순한데도 스테이지가 어려운 이유는, 구멍이 공격 수단이면서 동시에 길을 만드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면 바닥을 파야 하고, 파고 내려간 자리는 곧 메워지므로 되돌아올 수 없습니다. 순서를 잘못 정하면 금괴 하나를 남겨 둔 채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 갇힙니다.
적도 금괴를 주워서 들고 다닙니다. 금괴를 든 적을 구멍에 빠뜨리면 그 자리에 금괴를 떨어뜨리는데, 이걸 이용해 손이 닿지 않는 곳의 금괴를 가져오게 만드는 풀이도 있습니다. 부술 수 없는 벽돌과 파낼 수 있는 벽돌이 섞여 있어서, 어디를 팔 수 있는지 눈으로 구분하는 것도 익혀야 했습니다.
머리를 쓰는 액션
이 게임은 손이 빠르다고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화면을 보고 순서를 먼저 그려야 했습니다. 어느 금괴부터 집을지, 어느 시점에 어느 바닥을 팔지, 적을 어디로 몰아 둘지를 정하고 움직여야 했고, 그 계획이 틀리면 몇 초 만에 막다른 곳에 몰렸습니다.
반대로 순서를 제대로 잡으면 적들이 알아서 구멍으로 걸어 들어옵니다. 여러 마리를 한 줄로 유인해 연달아 빠뜨리고 그 위를 밟고 건너가는 장면이 이 게임의 가장 통쾌한 순간이었습니다.
판마다 구조가 완전히 달라서, 어떤 판은 사다리가 거의 없고 밧줄만 얽혀 있고, 어떤 판은 벽돌 미로처럼 생겼습니다. 화면 하나가 그대로 하나의 문제였습니다.
오래 살아남은 이유
이 게임은 여러 기종으로 옮겨지며 널리 퍼졌고, 기종마다 판 구성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스테이지를 직접 만들 수 있는 편집 기능이 붙은 판본도 있어서, 사람들이 자기가 만든 어려운 판을 서로 돌려 보기도 했습니다.
조작이 몇 개 안 되고 화면이 한 장이라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풀이가 명확하게 존재하는 문제를 손으로 실행하는 구조라 지금 해도 감각이 낡지 않습니다. 액션과 퍼즐 사이 어디쯤에 있는 이 형식은 이후 수많은 게임에 영향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