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 레스 2001
로보 레스 2001 (Robo Wres 2001) · 1986 · Sanrit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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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만든 게임이 상상한 2001년은, 사람 대신 로봇이 프로레슬링을 하는 세상이었습니다. 각 나라가 대표 로봇을 하나씩 내보내 링 위에서 잡고 던지고 조르는 겁니다. 지금 보면 귀여운 상상이지만, 로봇이라는 설정 덕분에 사람 몸으로는 나올 수 없는 과장된 기술이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팔이 늘어나고 몸통이 튕겨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링이었습니다.
로보 레스 2001(Robo Wres 2001)은 산리츠가 개발하고 세가가 유통한 아케이드 프로레슬링 게임입니다. 여섯 나라를 대표하는 로봇 레슬러가 참가하는 토너먼트를 헤쳐 나가는 구조이고, 두 명이 함께 붙을 수도 있습니다. 클래식 레슬링보다는 미국이나 일본식 프로레슬링에 가까운, 보여주기 위한 기술이 중심인 쪽입니다.
버튼 조합으로 기술이 갈리는 구조
조작은 레버와 버튼 몇 개가 전부입니다. 다만 같은 버튼이라도 상대와의 거리에 따라 나가는 기술이 달라집니다. 떨어져 있으면 달려들거나 발차기가 나가고, 붙어 있으면 잡기로 이어집니다. 이 거리 개념을 몸에 익히는 것이 이 게임의 첫 관문입니다.
잡기에 성공한 뒤가 진짜입니다. 붙잡은 상태에서 버튼을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던지기, 조르기, 메치기가 갈립니다. 당시 레슬링 게임 상당수가 그랬듯 버튼 연타로 승부가 갈리는 국면이 있는데, 이 게임 역시 잡고 버티는 힘겨루기에서 연타 속도가 결과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옆 사람과 붙었을 때 손목 싸움이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로프도 놀고 있지 않습니다. 로프에 튕겨 나오는 반동을 이용한 돌진 기술이 있고, 코너로 몰아 붙인 뒤에 나오는 공격도 따로 있습니다. 링이라는 좁은 공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실력 차이를 만듭니다.
여섯 로봇을 고르는 재미
참가 로봇마다 생김새와 성격이 다릅니다. 덩치가 큰 쪽은 잡기가 세지만 움직임이 굼뜨고, 날렵한 쪽은 치고 빠지기가 편한 대신 힘겨루기에서 밀립니다. 자기 손버릇에 맞는 로봇을 찾는 것이 초반의 즐거움입니다.
국가별 캐릭터를 내세우는 구성은 이 시기 대전 게임의 흔한 문법이었습니다. 몇 해 뒤 격투 게임들이 정착시킨 캐릭터 셀렉트 화면의 원형이 이런 스포츠 게임 쪽에서 먼저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봇이라는 껍데기를 씌운 덕분에 디자인의 폭도 넓었습니다.
처음 하면 막히는 지점
초보가 가장 많이 지는 이유는 무작정 달려들기 때문입니다. 거리를 재지 않고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기술이 나오지 않고, 그 빈틈에 상대에게 잡힙니다. 한 번 잡히면 연속으로 얻어맞고 자세가 무너지므로, 먼저 잡는 쪽이 유리한 게임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접근 각도부터 다듬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체력 관리입니다. 화려한 기술을 계속 쓰다 보면 정작 마무리해야 할 순간에 힘이 남지 않습니다. 상대가 쓰러졌을 때 확실하게 누르는 것, 그리고 불리할 때는 로프 쪽으로 도망쳐 거리를 벌리는 것, 이 두 가지만 지켜도 초반 상대는 넘길 수 있습니다.
토너먼트가 진행될수록 상대의 반응이 빨라집니다. 앞선 상대에게 통하던 단순한 패턴이 뒤에서는 그대로 반격당하므로, 기술 두세 개를 번갈아 쓰는 습관을 들이는 편이 좋습니다.
산리츠라는 회사와 그 시절 기판
산리츠는 이름이 크게 알려진 회사는 아니지만, 1980년대 중반 여러 아케이드 게임을 만들어 다른 회사 이름으로 내보내던 개발사입니다. 이 게임 역시 세가의 유통망을 타고 나갔습니다. 앞서 만든 레슬링 게임의 기판 구성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아, 같은 하드웨어에서 한 단계 발전한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1986년이라는 시점을 감안하면 캐릭터가 제법 크고 움직임도 부드럽습니다. 화면을 꽉 채운 두 로봇이 맞붙는 그림 자체가 당시 오락실에서 눈길을 끌기 좋은 구도였습니다. 소리 쪽에서도 음성 재생 칩을 써서 타격감을 보탰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는 대형 히트작 옆자리를 지키던 부류에 속합니다. 프로레슬링이라는 소재가 그 시절 텔레비전을 통해 익숙했던 데다, 둘이 붙어 버튼을 두들기는 단순한 구조라 처음 보는 사람도 곧바로 끼어들 수 있었습니다. 규칙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게임이 갖는 강점이 분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