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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캅

로보캅 (Robocop Us Revision 1) · 1988 · Data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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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는 주인공

액션 게임의 주인공은 대체로 빠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의 주인공은 느립니다. 뛰지도 않고 천천히 걷습니다. 처음에는 답답한데, 조금 하다 보면 그게 의도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 캐릭터는 피하는 게 아니라 맞고도 버티는 쪽이기 때문입니다. 총알이 몸에 튕기는 소리를 내면서도 그대로 걸어 들어가 상대를 쏘는 장면이 이 게임의 정체성입니다.

이 게임은 로보캅(RoboCop)입니다. 같은 이름의 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횡스크롤 액션 슈팅으로, 사이보그 경찰이 된 주인공이 도시의 범죄 조직과 기업의 병기를 상대해 나갑니다.

로보캅 슈팅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8)

총과 주먹

기본 무기는 권총입니다. 서서, 앉아서, 위를 향해 쏠 수 있고 탄약 제한이 없습니다. 가까이 붙은 적은 주먹으로 때려 처리할 수 있는데, 총보다 위력이 좋아서 일부러 붙어 싸우는 상황도 생깁니다. 벽이나 통을 부술 때도 주먹을 씁니다.

중간에 얻는 강화 무기가 이 게임의 재미를 크게 키웁니다. 연사가 되는 기관총이나 위력이 강한 무기를 얻으면 진행이 눈에 띄게 편해지는데, 탄이 정해져 있어서 다 쓰면 다시 권총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강한 무기를 언제 꺼낼지가 판단 요소가 됩니다.

체력은 게이지로 표시되고 아이템으로 회복합니다. 총알을 맞아도 즉사하지 않고 게이지가 깎이는 방식이라, 위험을 감수하고 밀고 들어가는 선택이 가능합니다. 이 점이 한 대 맞으면 죽는 같은 시기 액션 게임들과 확연히 다른 감각을 만들었습니다.

로보캅 슈팅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8)

스테이지와 보스

스테이지는 뒷골목, 창고, 공장, 기업 건물 같은 도시의 여러 장소로 이어집니다. 화면 안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적, 위층에서 총을 쏘는 적, 폭발물을 던지는 적이 섞여 있어서 진행 속도를 스스로 조절해야 합니다.

중간중간 영화의 장면을 옮긴 대목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인질을 붙잡고 있는 범인을 쏘아 맞히는 구간에서는 조준 화면으로 바뀌어 정확히 인질을 피해 쏴야 하고, 이런 짧은 변주가 지루함을 덜어 줍니다.

보스로는 무장한 차량과 대형 로봇이 나옵니다. 특히 커다란 이족 보행 병기를 상대하는 대목은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덩치와 묵직한 움직임 때문에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영화 게임이라는 자리

1980년대 후반에는 인기 영화를 게임으로 옮기는 일이 흔했고, 그중 상당수가 이름만 빌린 수준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 사이에서 원작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린 축에 듭니다. 느린 이동과 튼튼한 몸이라는 설계 자체가 원작 캐릭터의 성격에서 나온 것이라, 조작감이 곧 캐릭터 설명이 됐습니다.

음악과 효과음도 묵직한 쪽으로 맞춰져 있어서 화면과 잘 붙었습니다. 이후 여러 기종으로 옮겨지면서 조작감과 난도가 조금씩 달라진 판본들이 나왔고, 오락실판은 그중에서도 연출이 가장 화려한 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