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바 럼버
룸바 럼버 (Rumba Lumber) · 1984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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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쏘아 죽이는 게임은 흔합니다. 그런데 이 게임의 목표는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가두는 것입니다. 화면 가득 심어진 나무를 도끼로 하나씩 쓰러뜨려 나가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익룡이 앉을 자리가 점점 줄어듭니다. 남은 나무가 네 그루 이하가 되는 순간 한 판이 끝납니다. 그리고 남긴 나무가 적을수록 배율이 올라갑니다. 죽이지 않고 몰아붙여 궁지에 넣는다는 발상 하나로 게임 전체가 굴러가는 구조입니다.
룸바 럼버(Rumba Lumber)는 타이토가 내놓은 미로형 액션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원시인 캐릭터를 조종해 화면에 빽빽하게 서 있는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며 곤봉으로 나무를 찍어 넘깁니다. 한 그루를 넘기는 데 두어 번 내리쳐야 하고, 그 사이에는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나무를 베는 시간과 적을 피하는 타이밍 사이에서 계속 저울질하게 되는 것이 이 게임의 핵심입니다.
세 종류의 적, 세 가지 다른 위협
플레이어를 노리는 적은 성격이 뚜렷하게 다릅니다. 익룡은 나무 위를 날아다니다 불을 뿜습니다. 지형을 무시하고 하늘에서 오기 때문에 나무 뒤에 숨는 것으로는 막을 수 없고, 대신 앉을 나무가 없어지면 활동이 제한됩니다. 이 게임에서 가두는 대상이 바로 이 익룡입니다.
알에서 깨어 나오는 공룡은 지형을 그대로 뚫고 걸어옵니다. 나무든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고 직진하기 때문에 벽을 세워 막는다는 개념이 통하지 않고, 오직 거리를 벌리는 것으로만 대응합니다. 알이 보이면 미리 그 근처를 피해 동선을 잡는 것이 좋습니다.
땅속에서 튀어나오는 두더지는 예고가 가장 적은 적입니다. 나무를 찍고 있는 도중에 발밑에서 솟아오르면 대응할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한 자리에 오래 머무는 것 자체가 위험 요소가 됩니다. 나무를 하나 넘기면 곧바로 위치를 옮기는 습관을 들이는 편이 안전합니다.
돌바퀴와 한 판의 흐름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반격 수단은 돌바퀴입니다. 방향을 잡고 굴려 보내면 진행 경로에 있는 것들을 밀어 냅니다. 이것을 언제 쓰느냐가 판을 크게 좌우합니다. 적이 몰려 있는 방향으로 미리 굴려 길을 트고 그 사이에 나무를 베는 식으로, 공격이라기보다는 시간을 버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한 판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먼저 화면 전체의 나무 배치를 훑고, 익룡을 어느 쪽으로 몰아넣을지 대략 정합니다. 그다음 반대편부터 나무를 정리해 나가면서 남길 구역을 좁힙니다. 아무 데나 눈에 보이는 대로 베면 익룡이 화면 이쪽저쪽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마무리가 한없이 늘어집니다. 순서를 정하고 베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대단히 큽니다.
점수는 마지막에 남은 나무 수로 배율이 붙는 구조라, 안전하게 많이 베고 끝내느냐 위험을 감수하고 적게 남기느냐를 매번 선택하게 됩니다. 이 저울질이 이 게임을 단순한 반복 작업이 아니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목숨이 넉넉할 때는 배율을 노리고, 아슬아슬할 때는 안전하게 끊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화면마다 달라지는 방해 요소
장면은 네 종류가 순환하며, 각각 고유한 방해 요소를 하나씩 얹습니다. 강이 흐르는 화면에서는 물이 이동 경로를 잘라 놓아 동선이 훨씬 답답해집니다. 구름이 나오는 화면에서는 버섯이 다시 자라나 애써 정리한 구역이 원상 복구되기도 합니다. 화산이 있는 화면에서는 불덩이가 날아와, 한자리에 서서 나무를 찍는 행동 자체가 도박이 됩니다.
한 바퀴를 다 돌면 같은 네 장면이 다시 나오지만 조건이 나빠집니다. 아예 베어지지 않는 죽은 나무가 섞여 들어오는데, 이것이 생각보다 성가십니다. 계획한 대로 구역을 좁히려 했더니 정작 마지막에 남겨야 할 자리에 못 자르는 나무가 버티고 있는 상황이 나옵니다. 그래서 후반 루프에서는 나무를 찍기 전에 어느 것이 죽은 나무인지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84년의 타이토와 이 게임의 자리
1984년은 아케이드에서 규칙 하나로 승부를 보는 게임들이 쏟아지던 시기입니다. 영역을 채워 나가는 게임, 땅을 파고 적을 유인하는 게임, 화면을 정리해 나가는 게임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에 답하고 있었습니다. 룸바 럼버도 그 흐름 위에 있습니다. 영역을 줄여 적을 궁지에 몰아넣는다는 점에서는 영역 확보형 게임의 사고방식을, 지형을 직접 파괴하며 길을 낸다는 점에서는 땅파기 게임의 감각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타이토는 이 시기에 대단히 많은 기판을 냈고, 그중 크게 히트한 몇 편만 이름이 남았습니다. 룸바 럼버는 오래도록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쪽이었습니다. 국내 오락실에도 널리 깔린 작품은 아니어서, 지금 처음 접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면 규칙이 명확하고 한 판이 짧아 손에 붙는 속도가 빠릅니다. 화면을 어떻게 정리할지 머리로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대로 손이 따라가는지를 확인하는 게임입니다. 요즘 게임에서는 보기 어려운 형태라, 오히려 지금 해 볼 만한 구석이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