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맨 X
록맨 X (Megaman x Europe) · 1994 · Ca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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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스테이지에서 반드시 지는 싸움
고속도로 스테이지 끝에서 거대한 기계가 내려옵니다. 아무리 쏴도 체력이 조금밖에 안 깎이고, 결국 X는 팔이 잘린 채 쓰러집니다. 그때 제로가 나타나 한 방으로 그 기계를 날려 버리고 사라집니다. 게임을 켠 지 5분 만에, 주인공보다 강한 조연을 먼저 보여주는 시작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정해진 결말이 아닙니다. 게임을 진행하며 능력을 모으고 다시 오면 그 보스를 이길 수 있게 만들어 놨습니다. 지는 게 각본이라고만 생각했던 싸움을 나중에 실력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 이 게임이 첫인상부터 다른 이유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록맨 X(Mega Man X)는 패미컴에서 이어져 온 록맨 시리즈를 슈퍼패미컴으로 옮기면서 세계관과 조작을 전부 새로 짠 작품입니다. 스테이지를 골라 들어가 보스를 쓰러뜨리고, 그 보스의 무기를 빼앗아 다음 보스에게 쓰는 시리즈의 뼈대는 그대로입니다.
달라진 건 몸놀림입니다. X는 벽에 붙어 미끄러지며 뛰어오를 수 있고, 대시로 땅을 미끄러지듯 달릴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때문에 스테이지 설계 자체가 이전 시리즈와 달라졌습니다. 높은 벽이 막다른 길이 아니라 올라가라는 신호가 되고, 건너뛸 수 없어 보이는 구덩이가 대시 점프를 요구하는 구간이 됩니다.
여덟 보스와 약점의 사슬
스테이지는 여덟 개를 원하는 순서로 고를 수 있습니다. 스팅 카멜리오, 스톰 이글리드, 아머 아르마지, 런처 옥토펄드, 부메르 쿠왕가, 스파크 맨드릴러, 프래임 스탬퍼, 첼 페가시온이 각각의 스테이지를 지킵니다.
보스마다 약점 무기가 하나씩 있어서, 순서를 알면 훨씬 쉬워집니다. 이글리드를 먼저 잡아 얻은 무기로 맨드릴러를 치는 식으로 사슬이 이어집니다. 순서를 모르고 부딪히면 정직하게 버스터만으로 싸워야 하는데, 그것도 못 할 정도는 아니게 균형이 잡혀 있습니다.
보스를 잡으면 다른 스테이지도 바뀝니다. 스톰 이글리드를 처치하면 그 비행선이 추락해 다른 스테이지 일부가 불타고, 스파크 맨드릴러를 쓰러뜨리면 전기가 끊겨 어두워지는 구간이 생깁니다. 스테이지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 장치는 당시 기준으로 꽤 놀라운 연출이었습니다.
파츠와 하트, 그리고 숨은 것들
각 스테이지에는 X를 강화하는 물건이 숨어 있습니다. 라이프 업 하트는 체력 한 칸을 늘리고, 서브탱크는 에너지를 저장해 뒀다가 필요할 때 회복하게 해 줍니다.
핵심은 네 개의 아머 파츠입니다. 다리 파츠를 얻으면 대시가 열리고, 팔 파츠는 차지 샷을 강화하고, 몸통 파츠는 받는 피해를 줄이고, 머리 파츠는 위쪽 블록을 부술 수 있게 합니다. 각각 캡슐 안의 박사가 건네주는데, 이 캡슐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어서 스테이지를 구석구석 뒤지게 만듭니다.
여기에 더해, 숨겨진 캡슐에서 파동권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오래 회자됐습니다. 조건이 까다로워서 우연히 찾기는 어렵고, 알고 나면 보스를 한 방에 정리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스트리트 파이터를 만든 회사가 자기 게임에 심어 놓은 장난 같은 것인데, 당시 오락실과 학교에서 소문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지금 잡아도 손에 붙는 게임
30년 가까이 지난 게임인데도 조작감이 낡았다는 느낌이 거의 없습니다. 대시와 벽타기가 워낙 시원해서, 익숙해지면 스테이지를 거의 멈추지 않고 달려 나가게 됩니다.
난이도는 시리즈 안에서 무난한 편입니다. 파츠와 하트를 성실히 모으면 뒤로 갈수록 편해지고, 반대로 아무것도 안 모으고 요새로 직행하면 꽤 매섭습니다. 어느 쪽으로 하든 한 번쯤 끝까지 가 볼 만한, 슈퍼패미컴 액션의 대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