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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 아웃런

배틀 아웃런 (Battle Out Run Europe) · 1989 · S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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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스포츠카를 몰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그 게임을 떠올리며 시작하면, 몇 초 만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게임에는 도착점이 따로 없습니다. 대신 앞에서 도망치는 차가 있고, 그 차를 따라잡아 부딪혀 멈춰 세워야 합니다. 아웃런의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안에 든 것은 추격 게임입니다.

배틀 아웃런(Battle Out Run)은 1989년 마스터시스템으로 나온 레이싱 게임입니다. 화면 안쪽으로 뻗어 나가는 도로를 달리며 차를 조작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목표 차량을 따라잡아 충돌로 제압하는 것이 한 판의 목표입니다. 일반 차량들 사이를 헤치고 나가면서 속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빠르게 달리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배틀 아웃런 액션 게임 화면 1 - 마스터 시스템 (1989)

추격이라는 규칙

일반적인 레이싱 게임은 시간 안에 다음 구간까지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게임은 거기에 잡아야 할 대상을 얹었습니다. 도망치는 차는 화면 저 앞에 있고, 이쪽이 속도를 내야 거리가 좁혀집니다. 도로 위의 일반 차량에 부딪히면 속도가 죽고, 그동안 목표는 멀어집니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최고 속도 자체가 아니라 속도를 잃지 않는 주행입니다. 앞차를 미리 보고 차선을 바꾸며 흐르듯 지나가야 합니다. 급하게 핸들을 꺾으면 차가 휘청거리며 속도가 떨어지므로, 일찍 판단하고 부드럽게 옮기는 것이 요령입니다.

목표를 따라잡은 뒤에는 부딪혀서 멈춰 세워야 합니다. 이 마지막 단계가 의외로 까다롭습니다. 옆에 붙어서 밀어붙여야 하는데, 그 와중에도 일반 차량은 계속 나오고 도로는 굽어 있습니다. 다 따라잡고도 마지막에 부딪히지 못해 다시 멀어지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배틀 아웃런 액션 게임 화면 2 - 마스터 시스템 (1989)

차를 손보는 재미

이 게임에는 판 사이에 차를 개조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진행하며 얻은 자원으로 엔진이나 타이어 같은 부분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순수한 아케이드 레이싱에 성장 요소를 얹은 셈이라, 판을 거듭하며 차가 나아지는 감각이 있습니다.

강화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주행 성격이 달라집니다. 최고 속도를 올리면 직선에서 빠르게 거리를 좁힐 수 있지만, 굽은 길에서 다루기가 어려워집니다. 반대로 접지력 쪽을 올리면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는 대신 따라잡는 데 시간이 더 걸립니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앞으로 나올 도로의 성격에 달려 있습니다.

이 요소 때문에 초반에 고전하더라도 반복하다 보면 확실히 나아지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순수한 실력만으로 밀어야 하는 아케이드 레이싱보다 진입 장벽이 낮은 편입니다.

어디서 막히는가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흔히 겪는 실패는 시간 부족입니다. 일반 차량에 계속 부딪혀 속도를 잃으면 목표에 닿기도 전에 시간이 끝납니다. 부딪히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몸으로 알게 되는 데 몇 판이 걸립니다.

두 번째는 굽은 길에서의 처리입니다. 도로가 휘어지는 구간에서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려다 코스를 벗어나면 크게 손해입니다. 굽은 길이 보이면 미리 안쪽 차선으로 붙어 두는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세 번째는 조작감 자체에 적응하는 문제입니다. 마스터시스템의 화면 표현 한계 때문에 도로가 흐르는 모습이 부드럽지 않고, 앞차가 갑자기 커지듯 나타나는 느낌이 있습니다. 반응할 시간이 짧으니 화면 안쪽 멀리를 계속 보는 시선 습관이 필요합니다.

아웃런이라는 이름의 무게

원조 아웃런은 오락실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게임입니다. 빨간 스포츠카, 갈림길에서 고르는 경로, 라디오를 고르듯 선택하는 배경 음악 같은 요소가 하나하나 인상적이었고, 달리는 것 자체의 기분 좋음이 그 게임의 전부이자 전부로 충분했습니다.

배틀 아웃런은 그 이름을 이어받았지만 방향이 다릅니다. 여유롭게 달리는 드라이브가 아니라 쫓고 쫓기는 긴장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아웃런을 기대하고 잡은 사람은 실망하기도 했고, 반대로 다른 게임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나름의 재미를 찾기도 했습니다. 이름값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본 면이 있는 게임입니다.

한국에서 마스터시스템 시절

한국에서는 삼성이 세가의 8비트 기기를 들여와 팔았기 때문에, 마스터시스템용 게임이 나름의 사용자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레이싱 게임은 조작이 단순해 누구나 붙잡을 수 있어서, 친구 집에 모여 번갈아 하기 좋은 부류였습니다.

다만 아웃런이라는 이름이 워낙 유명해서, 이 게임을 처음 본 사람들이 원조 아웃런인 줄 알고 잡았다가 다른 게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이 흔했습니다. 추격이라는 규칙 자체는 신선했지만, 원조의 시원한 질주감을 기대한 만큼의 아쉬움이 남았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오히려 기대 없이 붙을 수 있어서, 8비트 기기로 만든 추격 레이싱이라는 시도 자체를 즐기기에는 더 나은 조건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