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보 맨
베라보 맨 (Beraboh Man Japan REV C) · 1988 · Namco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남코가 딱 한 번 시도하고 만 물건이 있습니다. 압력 감지 버튼입니다. 누르면 켜지고 떼면 꺼지는 보통 버튼이 아니라, 얼마나 세게 눌렀는지를 읽는 버튼이었습니다. 베라보 맨은 그 버튼을 쓴 게임입니다. 살짝 누르면 팔이 조금 뻗고, 힘껏 내리치면 팔이 화면을 가로질러 늘어납니다. 오락실 버튼을 진심으로 후려치게 만드는 게임이었던 셈입니다.
베라보 맨(Beraboh Man)은 팔다리가 늘어나는 초인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는 횡스크롤 액션입니다. 서구에서는 브라보맨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주인공의 평소 모습은 나카무라 히토시라는 평범한 사람인데, 이 이름은 당시 남코 사장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사장을 캐릭터로 만들어 놓고 게임을 낸 겁니다.
세게 누를수록 멀리 닿는다
공격 방법은 주먹과 발차기, 그리고 박치기입니다. 전부 몸이 늘어나는 방식으로 나갑니다. 여기서 압력 감지 버튼이 결정적입니다. 가볍게 누르면 가까운 적만 닿고, 세게 누르면 멀리 있는 적까지 닿습니다.
이건 흔히 말하는 모으기 공격과 다릅니다. 버튼을 누르고 있다가 떼는 게 아니라, 누르는 그 순간의 세기가 곧바로 결과가 됩니다. 그래서 손가락에 힘을 조절하는 감각 자체가 조작의 일부입니다. 이런 조작을 쓰는 게임이 지금도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 과감한 시도였습니다.
문제는 이 버튼이 오락실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이 온 힘을 다해 내리치는 물건이니 고장이 잦았을 수밖에 없습니다. 남코가 다시는 압력 감지 버튼을 쓰지 않은 이유도 짐작이 갑니다. 요즘 이 게임을 에뮬레이터로 하면 압력 대신 여러 단계의 입력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른 개가 넘는 짧은 스테이지
이 게임의 스테이지는 서른 개가 넘습니다. 숫자만 보면 방대하지만 하나하나는 짧습니다. 짧은 구간을 빠르게 넘기며 계속 새로운 장면을 보여 주는 구성입니다.
더 재미있는 건 중간에 장르가 바뀐다는 점입니다. 횡스크롤 액션으로 진행하다가 어느 순간 주인공이 잠수함이 되어 슈팅 게임이 시작됩니다. 이런 급작스러운 전환이 여러 번 나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통일감이 없어 보이지만, 그 시절에는 한 게임 안에서 계속 다른 걸 보여 주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후쿠라는 이름의 아이템도 모읍니다. 이걸 모으면 추첨을 담당하는 캐릭터를 통해 보너스를 받는 구조입니다. 게임 전체에 이런 장난스러운 요소가 깔려 있습니다.
특촬물에서 나온 게임
이 게임의 발상은 1960년대 일본 특촬물에서 왔습니다. 고무 인형 같은 괴수와 정의의 초인이 나오던 그 시절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기획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남코의 작곡가가 낸 아이디어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도에이 애니메이션 출신 인력이 참여해 그림에 애니메이션풍 색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화면이 다른 남코 게임들과 다른 결을 갖습니다. 적으로는 닥터 봄이라는 악당이 나옵니다.
일본에서만 통한 게임
이 게임은 일본에서 상당히 잘됐지만 서구에서는 반응이 미지근했습니다.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1960년대 일본 특촬물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 게임의 농담은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압력 감지 버튼이라는 낯선 조작까지 붙어 있으니 진입 장벽이 두 겹이었습니다.
이후 PC엔진으로 이식되었고, 한참 뒤에는 가정용 다운로드 서비스로도 나왔습니다. 남코 반다이가 웹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이 캐릭터를 되살린 적도 있습니다. 잊혔다가 다시 꺼내진 캐릭터인 셈입니다.
한국 오락실에서의 위치
한국 오락실에서 이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압력 감지 버튼이 달린 전용 조작반이 필요한 게임이라 국내 보급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 시절 국내 오락실은 기판만 갈아 끼우는 방식이 일반적이었고, 특수한 조작 장치가 필요한 게임은 들어오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한국에서 추억으로 이야기되기보다, 오락실 게임이 조작 장치로 무엇까지 시도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에 가깝습니다. 지금 해 보면 팔다리가 쭉쭉 늘어나는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이런 걸 진짜 손아귀 힘으로 조절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더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