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란디아
블란디아 (Blandia) · 1992 · Allu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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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격투 게임인데 체력만 깎아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상대가 두르고 있는 갑옷을 부숴야 승부가 납니다. 게다가 갑옷은 맞을수록 눈에 보이게 망가집니다. 화려한 판타지 그림 위에서 벌어지는 이 무기 싸움은, 대전 격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에 나온 실험작 가운데서도 유독 개성이 뚜렷합니다.
블란디아(Blandia)는 세상의 보물을 모두 차지하겠다고 나선 왕을 쓰러뜨리기 위해 여섯 전사가 나서는 판타지 대전 격투 게임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맨주먹이 아니라 무기를 들고 싸우고, 공격은 상단·중단·하단으로 나뉩니다.
갑옷을 깨는 규칙
이 게임의 핵심은 갑옷입니다. 상대의 방어구를 깨뜨려야 이길 수 있고, 공격이 어느 높이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깎이는 부위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무작정 강한 기술을 넣는 것보다 어디를 노릴지 고르는 판단이 앞섭니다.
부서진 갑옷은 그림으로 그대로 드러납니다. 판이 진행될수록 캐릭터의 차림이 점점 벗겨지고 찌그러져서, 지금 누가 유리한지 화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게이지를 확인하지 않아도 승부의 흐름이 읽히는 이 방식은 당시로서는 꽤 신선한 발상이었습니다.
한 라운드는 5분입니다. 시간 안에 결판이 나지 않으면 남은 체력이 많은 쪽이 이깁니다. 3판 2선승제로 진행되며, 혼자 대회를 뚫는 방식과 두 사람이 붙는 방식 모두 지원합니다.
무기를 든 여섯 명
캐릭터 여섯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온 전사들로 설정되어 있고, 손에 든 무기가 곧 그 캐릭터의 성격입니다. 리치가 긴 무기를 든 쪽은 거리를 벌리며 견제하고, 짧은 무기를 든 쪽은 파고들어야 합니다. 무기 길이 차이가 그대로 전투 거리로 이어지는 구조라, 캐릭터별 공략이 뚜렷하게 갈립니다.
기본 조작은 당시 유행하던 대전 격투의 문법을 따릅니다. 레버로 이동하고 웅크리고 점프하며, 버튼 조합으로 강약을 나눕니다. 여기에 무기와 갑옷이라는 층이 얹혀 있는 셈입니다.
그림은 이 게임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배경에 여러 겹의 스크롤을 넣어 깊이를 만들고, 판타지 세계의 성과 숲을 색감 있게 그려 넣었습니다. 캐릭터 도트도 큼직하고 동작이 시원해서, 지금 봐도 인상이 좋습니다.
시대에 묻힌 개성
이 작품이 나온 시기는 대전 격투 게임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던 때였습니다. 대형 회사들의 간판 시리즈가 오락실을 장악하고 있었고, 그 틈에서 낯선 이름의 판타지 격투 게임이 자리를 잡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지만, 갑옷 파괴라는 아이디어만큼은 지금 봐도 충분히 독창적입니다. 이후에도 무기와 방어구를 전투의 축으로 삼은 격투 게임은 여럿 나왔지만, 이렇게 이른 시기에 이 정도로 밀어붙인 사례는 드뭅니다.
기술 하나하나의 완성도나 밸런스를 놓고 보면 거친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규칙이 다르기 때문에 익숙한 격투 게임 감각이 그대로 통하지 않고, 그 낯섦 자체가 이 게임을 해 볼 이유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