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저
블레이저 (Blazer Japan) · 1987 · Na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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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이 비스듬히 흐릅니다
슈팅 게임의 화면은 대개 위로 흐르거나 옆으로 흐릅니다. 그 둘이 아닌 것을 만나면 처음에는 눈이 적응하지 못합니다. 이 게임이 그렇습니다. 화면이 대각선으로 흘러가서, 어느 쪽이 앞이고 어느 쪽이 옆인지 잠시 헷갈립니다.
이 방식이 흔치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만드는 쪽에서 손이 훨씬 많이 갑니다. 배경을 대각선으로 이어 붙여야 하고, 적이 나오는 위치도 화면 두 변에서 동시에 계산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그렇게 만든 것은, 남들과 다른 화면을 내놓는 것이 오락실에서 눈길을 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블레이저(Blazer)는 기체를 조종해 나아가면서 앞에서 오는 적을 쏘아 없애는 슈팅 게임입니다. 진행 방향이 비스듬하다는 점만 빼면 기본은 여느 스크롤 슈팅과 같습니다. 쏘고, 피하고, 구간 끝의 큰 적을 넘습니다.
조작은 조이스틱과 버튼입니다. 조이스틱으로 기체를 움직이고 버튼으로 쏩니다. 외울 조작이 없다는 점은 이 시기 오락실 게임의 미덕입니다. 동전을 넣은 사람이 5초 안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했고, 설명서를 읽고 시작하는 게임은 팔리지 않았습니다.
두 명이 함께할 수 있습니다. 다만 대각선으로 흐르는 화면에서는 둘이 겹치기 쉬워서, 한 명은 위쪽 한 명은 아래쪽처럼 자리를 나눠 두는 편이 편합니다.
대각선 화면에 익숙해지는 법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죽는 이유는 방향 감각입니다. 위로 흐르는 슈팅에서는 위에서 오는 것만 보면 되지만, 대각선으로 흐르면 두 변에서 동시에 적이 들어옵니다. 눈이 한쪽만 보고 있다가 반대쪽에서 오는 것에 맞습니다.
요령은 시선을 내 기체에 두는 것입니다. 화면 전체를 훑으려 하면 오히려 놓칩니다. 기체 주변의 좁은 범위만 또렷하게 보고, 나머지는 흐릿하게 흘려보내는 편이 훨씬 오래 삽니다. 이건 모든 슈팅 게임에 통하는 요령이지만, 화면이 낯설수록 더 중요해집니다.
두 번째 요령은 화면 안쪽에 머무는 것입니다. 진행 방향의 앞쪽 구석에 붙으면 새로 나타나는 적에 반응할 시간이 없습니다. 화면이 흘러오는 방향을 등지고 조금 물러나 있으면, 적이 화면에 들어온 뒤 반응할 여유가 생깁니다.
세 번째는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화면 구석의 아이템 하나를 먹겠다고 무리하게 움직이다가 죽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슈팅 게임에서 살아 있는 것보다 값진 아이템은 없습니다.
남코라는 회사
남코는 1980년대 오락실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입니다. 팩맨과 갤러그를 만든 곳이고, 그 두 작품만으로도 이 산업의 초기를 상징합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갤러그가 어떤 위치였는지 기억한다면, 남코라는 이름의 무게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다만 1987년의 남코는 이미 그 시절을 지나 있었습니다. 오락실은 더 화려한 화면과 더 큰 소리를 요구하고 있었고, 회사는 새 기판 위에서 여러 방향을 시험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험작 중 일부는 크게 성공했고, 일부는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이 게임은 뒤쪽에 가깝습니다.
이런 게임을 두고 실패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 가혹합니다. 오락실 기판은 원래 몇 달 단위로 소모되는 물건이었고, 한 회사가 1년에 여러 편을 내놓으며 무엇이 통하는지 확인하던 시기였습니다. 통하지 않은 시도가 다음 작품의 재료가 됐다고 보는 편이 실제에 가깝습니다.
지금 해 보면
이 게임은 한국 오락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물건은 아닙니다. 이 시기 국내 오락실에 들어온 기판은 대체로 이미 일본에서 검증이 끝난 것들이었고, 반응이 미지근했던 작품까지 바다를 건너오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런 게임을 해 보는 감각은 조금 특별합니다. 추억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에 있었지만 내가 못 봤던 것을 처음 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익숙한 남코의 소리와 색감 위에 낯선 화면이 얹혀 있는 조합이 묘하게 신선합니다.
몇 분만 붙잡아 보면 이 대각선 화면이 왜 널리 퍼지지 않았는지도 몸으로 알게 됩니다. 분명 인상적이지만, 오래 하기에는 눈이 피곤합니다. 그 피로감까지 포함해서 이 시기의 실험이 어땠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