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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드래곤

사일런트 드래곤 (Silent Dragon World) · 1992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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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로봇을 타고 걷습니다

벨트스크롤 액션에서 주먹과 발차기 말고 다른 것이 손에 들어오는 순간은 늘 반갑습니다. 쇠파이프나 칼이 떨어져 있으면 일단 줍고 보게 되는데, 이 게임은 그 자리에 아예 커다란 강화복을 놓아 두었습니다. 걸어가다 서 있는 기계에 올라타면 그때부터 화면 안에서 내가 제일 큰 존재가 됩니다.

그 순간의 쾌감이 이 게임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조금 전까지 나를 둘러싸고 두들기던 무리가 한 번에 밀려나고, 맞아도 잘 밀리지 않습니다. 물론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얼마 못 가 부서지고 다시 맨몸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그 낙차까지가 이 게임의 리듬입니다.

사일런트 드래곤 벨트스크롤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2)

어떤 게임인가

사일런트 드래곤(Silent Dragon)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가며 몰려오는 적을 처리하는 벨트스크롤 액션입니다. 무너져 가는 근미래 도시가 배경이고, 무장 조직에 맞서는 몇 명의 인물이 주인공입니다. 기본 조작은 공격과 점프, 그리고 체력을 조금 깎으며 주변을 한 번에 정리하는 필살기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네 명이 동시에 붙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화면 하나에 네 명이 들어가 각자 방향으로 흩어져 싸우는 구성은 1990년대 초반 오락실에서 사람을 가장 잘 끌어모으던 형태였습니다.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동전을 넣고 바로 합류할 수 있으니, 시작할 때 혼자였다가 어느새 넷이 되어 있는 일이 흔했습니다.

사일런트 드래곤 벨트스크롤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92)

캐릭터를 고르는 재미

고를 수 있는 인물은 성격이 뚜렷하게 갈립니다. 덩치가 큰 쪽은 한 대가 무겁고 잘 밀리지 않는 대신 동작이 느려서, 둘러싸이면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반대로 가벼운 쪽은 연타가 빠르고 이동도 빨라서 치고 빠지기가 편하지만, 한 대 맞을 때 깎이는 양이 큽니다.

여럿이 함께 할 때는 서로 다른 쪽을 고르는 편이 낫습니다. 느린 캐릭터가 앞을 막고 서 있는 동안 빠른 캐릭터가 옆으로 돌아 들어가면, 적이 한쪽으로 몰려서 정리가 훨씬 쉬워집니다. 넷이 전부 같은 방식으로 달려들면 화면 가운데에서 서로 자리를 빼앗고 오히려 더 많이 맞습니다.

사일런트 드래곤 벨트스크롤 게임 화면 3 - 오락실 (1992)

강화복을 다루는 법

강화복은 이 게임의 핵심이자 함정입니다. 탔을 때는 강하지만 몸집이 커진 만큼 맞는 면적도 커지고, 좁은 구간에서는 오히려 움직이기 불편해집니다. 그래서 아무 데서나 타는 것보다, 적이 몰려나오는 구간이나 큰 적을 만나기 직전에 남겨 두었다가 쓰는 쪽이 이득입니다.

또 하나는 강화복이 부서지는 타이밍을 미리 계산해 두는 것입니다. 부서지는 순간 맨몸이 그대로 적 한가운데에 놓이기 때문에, 상태가 안 좋아졌다 싶으면 미리 무리에서 빠져나와 안전한 자리에서 내려오는 편이 낫습니다. 이 하나만 지켜도 뒷부분에서 허무하게 잃는 목숨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막히는 지점

벨트스크롤이 늘 그렇듯 위험한 순간은 둘러싸이는 때입니다. 이 게임은 적이 화면 위아래에서 함께 들어오기 때문에, 화면 가운데에 서 있으면 앞뒤 양쪽에서 잡힙니다. 위쪽이나 아래쪽 끝 선에 붙어 있으면 한쪽에서만 오게 되어 대응할 방향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체력을 깎아 쓰는 필살기는 아껴 두었다가 붙잡혔을 때 빠져나오는 용도로 쓰는 편이 좋습니다. 화력이 아니라 탈출 수단으로 보면 쓰임새가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여럿이 할 때는 회복 아이템을 누가 먹을지 잠깐이라도 눈치를 봐야 합니다. 체력이 가득한 사람이 무심코 먹어 버리면 그 뒤 구간이 통째로 어려워집니다.

1992년의 오락실에서

이 무렵 오락실은 벨트스크롤 액션이 가장 붐비던 때였습니다. 만화나 영화를 앞세운 4인용 기판들이 줄지어 들어왔고, 그 경쟁 속에서 이 게임은 널리 알려진 원작 없이 자기 이야기만으로 자리를 잡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이름보다 로봇 타는 게임이라는 설명으로 더 자주 불렸습니다.

돌아보면 그 점이 오히려 이 게임의 성격을 잘 보여 줍니다. 익숙한 캐릭터가 없는 대신, 걸어가다 기계에 올라타는 한 장면으로 사람을 붙잡으려 한 게임입니다. 지금 해 봐도 그 장면 하나는 여전히 잘 작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