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공
드래곤 볼 (Dragon Bowl) · 1992 · N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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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이 닌자처럼 움직이는 이유
이 게임을 처음 하면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손오공이 화면에 나오는데, 움직임이 만화에서 보던 것과 전혀 다릅니다. 벽을 타고 오르고 칼을 휘두르듯 팔을 뻗으며, 적을 베고 지나가는 방식이 딱 닌자 액션 게임의 감각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게임은 테크모의 닌자 가이덴 오락실판을 그대로 가져다 그림만 손오공으로 바꿔 놓은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움직임과 판 구조, 적 배치가 원본 그대로이니 손오공이 닌자처럼 움직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소리는 또 다른 데서 가져왔습니다.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 2에서 뽑아낸 목소리와 효과음이 여기저기 붙어 있어서, 손오공이 춘리 목소리로 기합을 넣습니다. 그림은 이 만화에서, 소리는 저 게임에서, 뼈대는 또 다른 게임에서 가져온 조립품인 셈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드래곤 볼(Dragon Bowl)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이 게임은 옆으로 흐르는 화면을 달리며 몰려오는 적을 처치하는 액션 게임입니다. 두 명이 동시에 붙을 수 있고, 한 명은 현재의 손오공을, 다른 한 명은 미래에서 온 손오공을 조종합니다.
조작은 레버와 버튼 세 개입니다. 공격과 점프가 기본이고, 벽에 붙어 오르내리는 동작이 진행의 핵심입니다. 지형을 타고 위아래로 이동하면서 적을 처리하는 흐름이 원본 닌자 게임의 것을 그대로 따릅니다.
각 구역 끝에는 강한 적이 기다리고 있고, 그것을 넘겨야 다음으로 갑니다. 전체 구조는 그 시절 벨트 액션과 횡스크롤 액션의 중간쯤에 있습니다.
원본을 알면 공략이 쉬워진다
이 게임을 쉽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원본 게임의 요령을 그대로 쓰는 것입니다. 뼈대가 같으니 적 배치와 지형 구조, 위험한 자리가 대부분 일치합니다.
벽 타기가 핵심 생존 수단입니다. 지상에서 적에게 둘러싸이면 빠져나가기 어렵지만, 벽으로 붙어 올라가면 대부분의 적이 따라오지 못합니다. 위험할 때 일단 벽으로 붙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적을 다 잡을 필요도 없습니다. 계속 나타나는 구간이 있어서 붙잡고 싸우면 끝이 없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목표이니, 길을 막는 적만 처리하고 나머지는 흘려보내는 편이 낫습니다.
두 명이 함께하면 화면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다만 서로 겹쳐 있으면 둘 다 같은 공격에 당하기 쉬우니 위아래로 위치를 나누는 편이 안전합니다.
무허가 기판이라는 것
이 게임은 정식 허가를 받은 물건이 아닙니다. 만화 판권도, 기반이 된 게임의 권리도, 소리를 가져온 게임의 권리도 얻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졌습니다. 1990년대 초 아시아 오락실 시장에는 이런 기판이 적지 않았습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이미 완성된 게임의 프로그램을 가져와 그림 자료만 교체하면, 새 게임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물건을 낼 수 있습니다. 거기에 그 시기 가장 인기 있던 만화 캐릭터를 얹으면 오락실에서 눈길을 끌기 좋습니다.
문제는 완성도입니다. 원본의 그림에 맞춰 만들어진 프로그램에 다른 그림을 얹으니, 동작이 어색하거나 판정이 그림과 어긋나는 부분이 생깁니다. 캐릭터가 화면 안에서 미묘하게 겉도는 느낌이 드는 것이 이런 개조 기판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그 시절 만화 캐릭터와 오락실
이 시기 국내와 아시아 오락실에는 인기 만화 캐릭터를 붙인 정체불명의 기판이 꽤 돌아다녔습니다. 정식 게임이 나오기 전이거나, 나왔더라도 수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판들은 당시에는 그냥 손오공 게임으로 불렸습니다. 어른들도 구분하지 못했고, 오락실 주인 입장에서도 값싸고 손님이 붙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정품 여부를 따지는 문화가 자리 잡기 전의 풍경입니다.
지금 이 게임을 해 보는 것은 명작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그 시절 오락실에 어떤 물건들이 섞여 있었는지를 직접 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원본 닌자 게임을 알고 있다면 어디를 어떻게 손댔는지가 눈에 보여서, 그것대로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