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보이저
스타 보이저 (Star Voyager USA) · 1987 · Acclaim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패미컴 게임을 켰는데 화면에 우주선 조종석 계기판이 가득 차 있고, 앞유리 너머로는 별만 흐르고 있습니다. 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적이 어디 있는지는 레이더를 보고 알아내야 하고, 그쪽으로 기수를 돌려야 비로소 화면에 뭔가가 나타납니다. 8비트 게임에서 이런 화면을 처음 만나면 대개 몇 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버튼만 눌러 보게 됩니다.
스타 보이저(Star Voyager)는 아스키가 만든 1인칭 우주 전투 게임으로, 일본에서는 코스모 제네시스라는 제목으로 나왔고 북미에서는 어클레임이 스타 보이저라는 이름으로 냈습니다. 옆에서 보는 슈팅이 아니라 조종석 시점에서 우주 공간을 자유롭게 날며 적함과 싸우는 구조라, 같은 시기 패미컴 게임들과는 계보 자체가 다릅니다.
조종석에서 보는 우주
화면의 대부분은 계기판입니다. 가운데 뚫린 창으로 밖이 보이고, 그 주위를 각종 표시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남은 에너지, 무기 상태,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레이더가 있습니다. 우주는 사방이 뚫린 공간이라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레이더에 찍힌 점을 보고 기수를 돌려 적을 시야에 넣는 것이 모든 행동의 출발점입니다.
이동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방향을 트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목표를 조준선 안에 넣고 쏘면 맞습니다. 문제는 적도 움직인다는 점이라, 상대가 화면 밖으로 벗어나면 다시 레이더를 보고 쫓아야 합니다. 이 쫓고 쫓기는 과정이 이 게임 전투의 실체입니다.
에너지 관리도 중요합니다. 이동하고 쏘는 모든 행동이 자원을 갉아먹기 때문에, 무작정 돌아다니면 적을 만나기도 전에 곤란해집니다. 그래서 실제 플레이는 목적지를 정하고 최단 경로로 움직이면서 필요한 전투만 치르는 쪽으로 흘러갑니다.
무엇을 하러 날아다니는가
이 게임은 단순히 적을 계속 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우주는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구역 사이를 옮겨 다니며 임무를 수행하는 구조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게임의 절반입니다.
그래서 화면에 나오는 정보를 읽는 법을 익히는 것이 곧 실력이 됩니다. 계기판이 알려 주는 좌표와 방향 표시를 보고 자기 위치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되면, 그전까지 막막하기만 했던 우주가 갑자기 다닐 만한 곳으로 바뀝니다. 처음 몇 시간과 그 이후의 체감이 이렇게까지 다른 게임도 드뭅니다.
반대로 그 단계를 못 넘으면 계속 우주 미아 상태입니다. 아무 방향으로나 날다가 적을 만나면 싸우고, 에너지가 떨어지면 죽고, 다시 시작해도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이 게임이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겪는 상황이 대개 이것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붙잡아야 할 것
가장 먼저 할 일은 레이더 읽는 법을 익히는 것입니다. 화면 밖에 있는 것을 표시해 주는 유일한 수단이므로, 레이더를 보지 않고 창밖만 쳐다보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점이 어느 쪽에 찍혔는지에 따라 어느 방향으로 기수를 돌려야 하는지가 몸에 익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조준의 감각입니다. 적이 시야에 들어와도 조준선 한가운데 넣지 못하면 명중하지 않습니다. 움직이는 목표를 따라가며 조준선을 맞추는 연습을, 비교적 안전한 초반에 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세 번째는 물러설 줄 아는 것입니다. 에너지가 위험한 수준까지 떨어졌는데 눈앞의 적을 마저 잡겠다고 버티면 대개 그대로 끝납니다. 상황이 나쁘면 등을 돌려 빠져나오는 판단이, 이 게임에서는 잘 쏘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8비트가 감당한 3차원
1980년대 중후반은 가정용 기기에서 3차원 시점을 흉내 내려는 시도가 여기저기서 나오던 시기였습니다. 서양 컴퓨터 쪽에는 우주 무역과 전투를 결합한 유명한 계보가 이미 있었고, 그 발상을 콘솔로 가져오려는 시도가 여러 회사에서 나왔습니다. 이 게임도 그 흐름 위에 있습니다.
당시 기기 성능으로 진짜 입체 화면을 그리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이 게임이 택한 방법은 실제 3차원 공간을 계산하되 화면에는 계기판과 최소한의 물체만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이 화려하지 않은 대신, 우주선을 몰고 있다는 감각은 의외로 잘 살아 있습니다. 아스키는 이후에도 이런 시뮬레이션 성향의 기획을 여럿 내놓은 회사였습니다.
국내에서는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게임입니다. 문방구 복사팩이나 게임기 내장 목록에서 이름만 보고 지나치기 쉬웠고, 실제로 켜 봐도 무엇을 하는 게임인지 알아내기까지 시간이 걸려서 몇 분 만에 다른 팩으로 넘어간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마리오나 콘트라 옆에 놓여 있기에는 너무 조용하고 낯선 게임이었지만, 그 낯섦이 지금은 오히려 이 게임을 찾아보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