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더 후프
썬더 후프 (Thunder Hoop Ver 1) · 1992 · Gael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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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오락실 기판을 만들던 회사들은 대부분 일본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면 어딘가에 스페인 회사 이름이 떠 있는 게임을 만나면 잠깐 갸웃하게 됩니다. 가엘코는 그 드문 예외였고, 썬더 후프는 이 회사가 자기 색을 확실히 낸 초기작 중 하나입니다.
썬더 후프(Thunder Hoop)는 옆으로 스크롤하는 액션 게임입니다. 주인공이 사다리를 오르고 발판을 뛰어넘으며 길을 가로막는 괴물들을 쓰러뜨리고, 구역 끝에서 기다리는 보스를 잡아 젠브레인 박사를 무너뜨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주먹으로 공격하는 기본 상태에서 시작해, 길에 놓인 파워업을 먹으면 무기가 강해집니다. 혼자 하거나 둘이 번갈아 가며 할 수 있습니다.
밀고 나가는 액션
이 게임은 정밀한 점프 곡예를 요구하는 플랫폼 게임보다는, 앞으로 밀고 나가며 계속 싸우는 액션 게임 쪽에 가깝습니다. 발판과 사다리가 층을 만들어 위아래로 오르내리게 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에서 적이 계속 등장합니다.
핵심은 층 이동 중의 무방비 상태를 관리하는 것입니다. 사다리에 매달려 있는 동안이나 점프 중에는 공격도 회피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올라가기 전에 위층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확인이 안 되면 조금 물러나 적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편이 안전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다리를 타다가 위에서 내려온 적과 겹쳐 체력이 뭉텅이로 깎이는 것이 이 게임의 대표적인 죽는 방식입니다.
파워업의 영향도 큽니다. 맨주먹 상태에서는 적에게 바짝 붙어야 하는데, 그 거리가 곧 위험 거리입니다. 원거리 무기를 얻으면 같은 구간이 갑자기 수월해집니다. 그러니 파워업을 놓쳤다면 무리해서 밀지 말고 조심스럽게 진행하는 쪽이 낫습니다.
난이도가 튀는 구간
이 계열 게임이 대개 그렇듯, 난이도는 완만하게 오르지 않고 특정 구간에서 확 튑니다. 좁은 통로에서 여러 방향으로 적이 몰려오는 곳, 그리고 발판이 좁아 물러설 공간이 없는 곳이 그렇습니다. 이런 데서는 앞으로 나가려는 본능을 누르고, 한 걸음 물러나 적을 하나씩 끌어내 처리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보스전에서는 패턴을 외우는 것 말고 방법이 없습니다. 처음 몇 번은 어차피 죽으면서 공격 순서를 눈에 익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마음이 편합니다. 대신 보스에 도착할 때 체력을 얼마나 남겨 왔느냐가 결과를 크게 좌우하므로, 앞 구간에서 무리하지 않는 것이 사실상 보스 공략의 절반입니다.
가엘코라는 회사
가엘코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자리 잡은 아케이드 제작사입니다. 일본과 미국 회사들이 시장을 나눠 갖던 시절에 유럽에서 자체 기판을 설계하고 게임을 만들어 유럽 전역에 공급했고, 이후에도 레이싱과 스포츠 계열로 이름을 이어 갔습니다.
이 시기 가엘코 게임들에는 공통된 인상이 있습니다. 캐릭터 그림이 일본 게임의 만화풍과 다르고, 색 쓰는 방식도 유럽 만화 쪽에 가깝습니다. 썬더 후프의 주인공과 적들도 일본 게임에서 보던 얼굴과는 결이 다릅니다. 이 차이 때문에 화면만 봐도 어딘가 낯선데, 그 낯섦이 이 게임을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기술적으로도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스페인 시장은 일본에 비해 규모가 작았고, 그래서 가엘코는 화려한 사양보다 적은 자원으로 인상적인 화면을 뽑는 쪽에 공을 들였습니다. 배경 스크롤과 캐릭터 크기의 균형이 당시 유럽 기판치고는 상당히 잘 잡혀 있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한국 오락실에 유럽 기판이 정식으로 들어오는 일은 흔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썬더 후프를 오락실에서 직접 해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대개는 나중에 여러 게임이 모인 목록을 뒤지다가 마주치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켜 보면 낯설지 않습니다. 옆으로 가면서 때리고 뛰고 사다리를 타는 방식은 그 시절 오락실에서 수없이 반복하던 것이라, 손이 먼저 기억합니다. 다른 점은 화면 안에 있는 것들의 생김새와 분위기뿐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익숙한 규칙을 낯선 그림으로 다시 만나는 재미가 있습니다. 브라우저에서 바로 켤 수 있으니, 그 시절 일본 게임만 보던 눈에 다른 동네 게임은 어떤 얼굴이었는지 확인해 보기에 알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