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로마이트
자이로마이트 (Gyromite World) · 1985 · Nintendo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게임기가 아니라 장난감으로 보이려고 만든 게임
1980년대 중반, 미국의 가정용 게임 시장은 크게 무너진 직후였습니다. 가게에서 게임기라는 물건 자체를 받아 주지 않던 시기에, 닌텐도는 본체와 함께 작은 로봇을 끼워 팔았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의 신호를 눈으로 읽어 팔을 움직이는 로봇이었고, 그 로봇을 쓰려고 만든 게임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로봇은 게임기를 장난감 코너에 밀어 넣는 데 성공했고, 정작 로봇용 게임은 두 개밖에 나오지 않은 채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자이로마이트(Gyromite)는 그 로봇과 짝을 이루는 액션 퍼즐입니다. 플레이어는 연구실을 헤매는 박사를 조종해 흩어진 물건을 모두 회수해야 하는데, 통로를 가로막은 빨간 기둥과 파란 기둥이 문제입니다. 이 기둥은 박사가 직접 건드릴 수 없고, 두 번째 조종기의 버튼으로만 올리고 내릴 수 있습니다.
기둥을 올리고 내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규칙은 단순합니다. 빨간 버튼을 누르면 빨간 기둥이 오르내리고, 파란 버튼을 누르면 파란 기둥이 오르내립니다. 박사는 걷고 사다리를 오를 뿐 아무 공격도 하지 못하므로, 플레이어가 할 일은 박사가 지나갈 길을 기둥으로 열어 주고 동시에 쫓아오는 적을 기둥으로 막거나 가둬 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게임의 고약한 점이 나옵니다. 기둥이 올라가는 자리에 박사가 서 있으면 박사가 그대로 천장에 끼여 죽습니다. 적을 막으려고 급하게 누른 버튼이 내 목숨을 끊는 일이 수시로 벌어지고, 그래서 이 게임은 손이 빠른 것보다 다음 두 수를 미리 정해 두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두 가지 진행 방식
기본 모드에서는 박사를 직접 조종해 물건을 모읍니다. 화면 안의 물건을 전부 회수하면 다음 층으로 넘어가고, 층이 올라갈수록 기둥의 배치가 꼬이고 적의 수가 늘어납니다. 길은 하나가 아니지만, 잘못된 순서로 기둥을 올려 버리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다른 모드에서는 박사가 스스로 걸어 다니고, 플레이어는 그 앞길을 열어 주는 역할만 맡습니다. 박사는 위험 앞에서도 멈추지 않기 때문에, 적이 다가오면 미끼가 될 물건을 떨어뜨려 시선을 돌리고 그 틈에 통로를 여는 식으로 풀어야 합니다.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를 살려 내야 한다는 점에서 앞의 모드보다 훨씬 신경이 곤두섭니다.
로봇 없이도 할 수 있습니다
로봇은 두 번째 조종기의 버튼을 대신 눌러 주는 장치였습니다. 화면이 번쩍이면 그 신호를 읽고 팔을 움직여 스위치를 누르는 구조인데, 동작이 느리고 준비도 번거로웠습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로봇을 치워 두고 두 번째 조종기를 직접 손에 쥐고 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로봇 없이 하면 게임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반응이 즉각적이라 난이도가 확 내려가고, 대신 순수한 퍼즐 게임에 가까워집니다. 둘이 함께 하면 한 사람이 박사를 조종하고 다른 사람이 기둥을 맡는 협동 게임이 되는데, 이때가 이 게임이 가장 재미있어지는 순간입니다. 서로 소리를 지르며 타이밍을 맞추게 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실패는 조급함입니다. 적이 다가온다고 무작정 기둥을 올렸다가 박사가 끼여 죽는 일이 반복되면, 대개 화면 전체를 보는 대신 박사 주변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기둥을 누르기 전에 박사의 발밑을 먼저 확인하는 것만으로 사망 횟수가 크게 줄어듭니다.
또 하나는 적을 없애려 드는 습관입니다. 이 게임에서 적은 없애는 대상이 아니라 피하고 가두는 대상에 가깝습니다. 기둥 사이에 적을 끼워 넣어 움직임을 봉쇄해 두고, 그동안 반대편 물건을 회수하고 오는 식의 운영이 정석입니다.
국내에서는 어떻게 만났나
국내에서 이 로봇 주변기기를 실제로 가져 본 사람은 아주 드물었습니다. 대신 게임 자체는 여러 게임이 한꺼번에 들어 있던 복사팩을 통해 알려졌고, 로봇의 존재를 모른 채 두 번째 조종기로 기둥을 누르며 하던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하나의 화면을 두고 협력해야 한다는 구조 덕분에, 형제나 친구끼리 붙잡고 하던 게임으로 기억됩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조작이 소박한 대신 발상이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주인공이 아무 공격도 하지 못하고, 플레이어의 유일한 힘이 지형을 바꾸는 것뿐이라는 설계는 지금 기준으로도 충분히 신선합니다. 게임기 한 대를 팔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지만, 게임 자체는 그 사정과 무관하게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