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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외마경 진전

천외마경 진전 (Far East of Eden Kabuki Klash Tengai Makyou Shin Den) · 1995 · Hud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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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가 격투 게임으로 건너온 경우

천외마경은 원래 대전 격투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허드슨이 만든 롤플레잉 시리즈였고, 일본풍이 아니라 외국인이 상상한 이상한 일본을 무대로 삼는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알려진 작품이었습니다. 그 세계관이 1995년에 네오지오 기판 위에서 격투 게임이 되어 나왔다는 것이, 이 게임을 기억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RPG를 격투 게임으로 옮기는 시도는 이 무렵 드물지 않았습니다. 인기 있는 세계관을 가져다 캐릭터를 세워 놓고 붙이면 되니까요. 다만 원작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낯선 인물들이 갑자기 등장하는 셈이라, 이 게임이 국내 오락실에서 크게 인기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네오지오 대전 격투라는 자리 자체가 이미 강한 이름들로 꽉 차 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천외마경 진전 대전격투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5)

어떤 게임인가

천외마경 진전(Kabuki Klash)은 캐릭터를 하나 골라 일대일로 맞붙는 2D 대전 격투 게임입니다. 네오지오 기판의 표준 구성인 레버 하나와 버튼 넉 대로 조작하고, 라운드제로 상대 체력을 먼저 깎아 내면 이깁니다. 다른 네오지오 격투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손이 그대로 옮겨 갑니다.

원작의 분위기를 살려 캐릭터들의 생김새와 기술이 일본 전설과 요괴 쪽에서 나온 것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사람이 그냥 주먹을 지르는 것보다 기묘한 형상이 튀어나오는 장면이 많아서, 화면만 봐도 다른 격투 게임과 구별이 됩니다.

천외마경 진전 대전격투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95)

손에 잡히는 감각

이 게임의 첫인상은 시원하다기보다 묵직한 쪽입니다. 캐릭터들이 크게 그려져 있어서 화면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넓고, 그만큼 서로의 공격이 닿는 거리도 가깝습니다. 멀찍이 떨어져 장풍만 주고받는 전개보다는 가까이 붙어서 주고받는 전개가 자주 나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은 기술이 나가는 타이밍입니다. 준비 동작이 눈에 보이게 있는 기술이 많아서, 아무 때나 내밀면 상대에게 그대로 얻어맞습니다. 상대가 무언가를 내밀어 굳어 있는 순간을 노려 넣어야 제값을 합니다. 이 감각만 잡히면 컴퓨터 상대는 꽤 수월해집니다.

요령을 하나 더 꼽자면 화면 구석을 피하는 것입니다. 대전 격투 게임에서 구석에 몰리면 빠져나올 방법이 줄어드는데, 이 게임은 캐릭터가 큰 만큼 그 답답함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밀리기 시작했다 싶으면 점프든 무엇이든 써서 자리를 바꾸는 것이 먼저입니다.

천외마경 진전 대전격투 게임 화면 3 - 오락실 (1995)

캐릭터 고르기

이런 게임은 결국 누구를 잡느냐가 재미의 절반입니다. 빠르게 파고들어 흔드는 캐릭터와 한 방이 무거운 캐릭터가 나뉘어 있어서, 몇 판 돌려 보면서 자기 손에 맞는 쪽을 찾는 과정이 있습니다. 원작 팬이라면 아는 인물을 먼저 잡아 볼 테고, 원작을 모르는 사람은 그냥 생김새가 마음에 드는 쪽을 고르게 되는데 둘 다 맞는 방법입니다.

대전으로 붙으면 성격이 또 달라집니다. 컴퓨터는 패턴이 읽히지만 사람은 이쪽이 노리는 타이밍을 피해 가기 때문에, 언제 들어갈지를 두고 서로 눈치를 보게 됩니다.

숨은 작품으로 남은 이유

1995년의 네오지오는 이미 격투 게임으로 이름난 작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틈에서 원작 RPG를 모르는 손님을 끌어오기는 쉽지 않았고, 국내 오락실에서는 기판 자체를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름은 들어 봤지만 실제로 해 본 적은 없는 게임으로 남은 경우가 많습니다.

허드슨은 이 시기 여러 기종에 발을 걸치고 있던 회사였습니다. 자기 간판 시리즈를 다른 회사의 기판 위에 격투 게임으로 올린다는 것은, 세계관을 더 넓은 곳에 보여 주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과가 기대만큼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의도 자체는 화면에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오히려 그 점이 매력이 됩니다. 당시에 흔했던 격투 게임들과 결이 다른 소재를 가져다 붙인 시도라, 몇 판만 돌려도 이 게임만의 분위기가 확실히 남습니다. 유명하지 않은 네오지오 격투 게임을 찾는 사람이라면 목록에 올려 둘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