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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 패미컴판

카발 (Cabal USA) · 1990 · Milton Bradley

방향버튼ASZX보조QERT동전Shift시작Enter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총을 든 병사가 화면 맨 아래에 서 있고, 화면 위쪽에는 건물과 벽과 적병이 가득한 진지가 통째로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사격이 아닙니다. 총알이 벽을 갉아먹고, 건물이 무너지고, 배경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집니다. 마지막에 화면 위쪽의 구조물을 전부 부수고 나면 그 스테이지가 끝납니다. 배경을 부수는 것이 곧 진행이라는 발상은 그 시절 슈팅게임에서 흔치 않은 것이었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카발(Cabal)은 화면 아래의 자기 캐릭터와 화면 위의 조준선을 함께 움직이는 방식의 슈팅게임입니다. 방향키를 누르면 병사가 좌우로 뛰면서 동시에 조준선도 따라 움직이고, 사격 버튼을 누른 채로 움직이면 병사는 제자리에 선 채 조준선만 움직입니다. 즉 쏘면서 조준하는 것과 뛰면서 피하는 것을 한 손으로 갈아타야 합니다. 이 한 가지 규칙이 게임 전체의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카발 패미컴판 슈팅 게임 화면 1 - 패미컴 (1990)

조준과 회피를 동시에

적탄은 화면 위쪽에서 아래로 날아옵니다. 화면 아래쪽 좌우 끝에는 몸을 굴려 피하는 회피 동작이 있어서, 방향키를 빠르게 두 번 넣으면 병사가 구르면서 잠시 무적이 됩니다. 이 구르기를 언제 쓰느냐가 실력 차이를 가장 크게 만듭니다. 초보자는 총알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나서 구르기 때문에 늦고, 익숙한 사람은 적이 총을 쏘는 자세를 잡는 순간 이미 반대편으로 굴러가 있습니다.

초보자가 가장 자주 죽는 이유는 사격 버튼을 놓지 못해서입니다. 조준선을 정확히 맞추고 싶은 마음에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으면 병사는 제자리에 못박혀 있고, 그 사이에 적탄이 날아옵니다. 반대로 겁을 먹고 계속 뛰어다니기만 하면 조준선이 자꾸 흔들려서 아무것도 못 부숩니다. 쏠 때 쏘고 빠질 때 빠지는 리듬을 몸에 익히는 것이 이 게임의 첫 관문입니다.

수류탄도 있습니다. 조준선 위치에 던져서 넓은 범위를 한 번에 날려버리는데, 개수가 한정되어 있어서 아껴 쓰게 됩니다.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찬 구간이나 적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순간에 쓰면 효과가 큽니다.

카발 패미컴판 슈팅 게임 화면 2 - 패미컴 (1990)

배경을 부수는 재미

이 게임의 가장 큰 즐거움은 파괴 그 자체입니다. 벽에 총알을 계속 박으면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이 커지면서 벽 전체가 무너집니다. 뒤에 숨어 있던 적이 엄폐물을 잃고 드러나기도 하고, 무너지는 건물에 적이 깔리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적만 노리다가, 나중에는 적이 숨을 곳을 먼저 없애는 쪽으로 생각이 바뀝니다.

건물 중에는 부수면 아이템이 나오는 것도 있습니다. 연사가 빨라지거나 산탄으로 바뀌는 무기 강화, 수류탄 보충, 점수 아이템 같은 것들입니다. 무기가 강화된 상태와 기본 상태의 체감 차이가 커서, 강화를 받고 나면 진행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집니다. 다만 한 번 죽으면 기본 무기로 돌아가기 때문에, 좋은 무기를 들고 있을 때일수록 더 조심하게 됩니다.

보스와 스테이지 구성

여러 스테이지를 거치는 구성이고, 각 구역의 마지막에는 보스가 기다립니다. 보스는 대체로 크고, 여러 방향으로 탄을 뿌리고, 약점 부위를 집중적으로 때려야 합니다. 조준선을 약점에 고정하려면 사격 버튼을 누르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못 움직이니, 결국 짧게 쏘고 굴러 피하고 다시 짧게 쏘는 것을 반복하게 됩니다. 게임의 기본 규칙이 보스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헬리콥터나 장갑차처럼 움직이는 적도 나옵니다. 이런 적은 가만히 있는 건물과 달리 조준선을 따라가며 맞춰야 해서, 미리 갈 곳을 예측해 조준선을 놓아두는 요령이 필요합니다. 익숙해지면 적이 나타나기 전에 조준선을 그 자리에 대기시켜 두고 등장하자마자 처리하게 됩니다.

패미컴판의 사정

원작은 1988년 오락실에 나온 게임이고, 트랙볼이나 레버로 조준선을 다루는 조작을 전제로 만들어졌습니다. 패미컴에는 그런 입력 장치가 없으니 이식판은 십자키 하나로 이동과 조준을 겸하는 쪽으로 바꿔야 했습니다. 그 결과 오락실판보다 조준이 뻑뻑하게 느껴지고, 화면에 나오는 적과 건물의 수도 줄었습니다.

대신 패미컴판은 패미컴판대로 다듬어져 있습니다. 스테이지 구성이 정리되어 있고, 적이 나오는 타이밍이 정직해서 반복해서 하면 외워집니다. 오락실판을 먼저 해 본 사람에게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식판만 접한 사람에게는 이것대로 완결된 게임입니다.

국내에서의 카발

한국 오락실에서는 원작 쪽이 훨씬 널리 알려졌습니다. 화면을 통째로 부수는 그림이 눈에 띄어서 지나가다 구경하는 사람이 많았고, 2인 동시 플레이로 둘이서 진지를 갈아엎는 맛이 좋아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비슷한 방식의 게임들이 여럿 나왔지만, 이 형태를 두고 아예 카발식이라고 부를 만큼 원형으로 자리 잡은 것이 이 게임입니다.

가정용으로는 패미컴 복사팩에 실려 접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락실에서 보던 그 게임이 집에 있는 기계에서도 돌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반가웠고, 조작이 다르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는 식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조준선을 다루는 감각이 낯설지만, 몇 판 잡고 있으면 왜 이 게임이 하나의 장르 이름이 되었는지가 손끝으로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