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넌 포더
캐넌 포더 (Cannon Fodder Europe En Fr de Es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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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재미있다, 라고 써 놓고
이 게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게임 자체보다 시작 화면입니다. 경쾌한 노래가 흐르는데 가사는 전쟁이 재미있다는 내용이고, 화면에는 병사들이 줄지어 행진합니다. 그런데 게임을 시작하면 그 병사들이 몇 초 만에 죽습니다. 그리고 죽은 병사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가 언덕에 하나씩 늘어납니다.
이 대비가 이 게임의 전부입니다. 명랑하게 포장해 놓고 안에는 소모품처럼 갈려 나가는 병사들을 넣어 둔 것입니다. 제목부터가 총알받이라는 뜻이니, 만든 쪽에서 감출 생각이 없었습니다. 1990년대 초에 이런 태도로 만든 게임은 드물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회자됩니다.
어떤 게임인가
캐넌 포더(Cannon Fodder)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병사 몇 명을 이끌고 지도를 가로지르는 전략 슈팅입니다. 한 판의 목표는 대개 단순합니다. 적을 모두 없애거나, 특정 건물을 부수거나, 지정된 지점까지 가는 것입니다.
독특한 점은 조작 방식입니다. 원작은 마우스로 하는 게임이었습니다. 화면의 한 지점을 가리키면 병사들이 그리로 이동하고, 다른 버튼을 누르면 그 지점을 향해 총을 쏩니다. 이동과 사격이 같은 손끝에서 나뉘어 나오는 구조라, 익숙해지면 걸어가면서 옆을 향해 쏘는 것 같은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됩니다.
병사를 나누는 재미
이 게임의 전술적 핵심은 부대를 쪼개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두 한 덩어리로 움직이지만, 명령을 내려 무리를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쪽을 안전한 자리에 세워 두고 다른 한쪽으로 적을 끌어내는 식의 작전이 가능해집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이 게임의 병사는 한 발만 맞아도 죽기 때문입니다. 체력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다섯 명이 뭉쳐 있다가 수류탄 한 발을 맞으면 다섯이 한꺼번에 사라집니다. 그래서 뭉쳐 다니는 것 자체가 위험한 습관이고, 이 사실을 몸으로 배우기까지 많은 병사가 죽습니다.
무기도 챙겨야 합니다. 기본 총으로는 건물이나 차량을 상대하기 어렵고, 지도 곳곳에 놓인 수류탄이나 로켓을 주워야 합니다. 다만 이것들은 수량이 한정되어 있어서, 아껴 쓸 것인가 지금 쓸 것인가를 계속 저울질하게 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
가장 흔한 실패는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입니다. 지도가 넓고 목표가 멀어 보이니 서둘러 전진하게 되는데, 이 게임에서 서두름은 곧 전멸입니다. 나무 뒤나 바위 뒤에서 적이 갑자기 나타나고, 나타난 순간 이미 총알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요령은 시야를 사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 걸음 옮기고 화면을 훑고, 위험해 보이는 방향으로 먼저 총알을 몇 발 뿌려 보고 나서 움직입니다. 느리지만 병사를 잃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지형을 쓰는 것입니다. 물가나 절벽 같은 곳은 적이 넘어오지 못하니, 그런 지형을 등지고 싸우면 신경 쓸 방향이 줄어듭니다. 평지 한가운데서 사방을 상대하는 것은 병력이 아무리 많아도 불리합니다.
세 번째는 병사를 아끼는 마음입니다. 이 게임은 죽은 병사가 돌아오지 않고, 살아남은 병사는 계급이 올라가며 실력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대충 굴려도 되는 소모품이 아니라, 오래 데리고 다닐수록 값어치가 커지는 자산입니다. 언덕의 묘비가 늘어날 때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도 이 설계 덕분입니다.
만든 곳과 그 시절
이 게임을 만든 곳은 영국의 소규모 개발사입니다. 같은 팀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축구 게임으로도 이름을 얻었는데, 두 게임을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점이 보입니다. 등장인물을 아주 작게 그려 화면 안에 넓은 공간을 담고, 조작은 극단적으로 줄이고, 대신 판단할 것을 잔뜩 남겨 두는 방식입니다.
1990년대 초 영국의 가정용 컴퓨터 게임 문화는 이런 작고 영리한 게임을 많이 낳았습니다. 큰돈을 들일 수 없으니 발상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 제약이 오히려 개성으로 남았습니다.
작은 화면으로 옮겨 놓고 보면
이 휴대용 기기판은 마우스가 없는 기계에서 마우스 게임을 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화면도 좁아서 원작의 넓은 시야가 크게 줄어듭니다. 원작을 알고 잡으면 답답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도 병사 몇 명을 데리고 조심조심 나아가다가 한순간에 잃는 그 긴장감은 남아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 게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유럽 컴퓨터 게임 문화 자체가 국내에 잘 건너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해 보면 추억이 아니라 발견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