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스캐너
타임 스캐너 (Time Scanner SET 2 System 16b) · 1987 · S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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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안의 핀볼대
실제 핀볼 기계는 덩치가 크고 비싸고 고장도 잦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 오락실 제작사들은 핀볼을 화면 안으로 옮기는 시도를 여러 번 했습니다. 이 게임은 그중에서도 꽤 공들여 만든 축에 듭니다. 세가가 당시 주력 기판 위에 올린 물건이라 화면이 넉넉하고, 공이 튀는 느낌도 그 시절 화면 핀볼치고는 상당히 그럴듯합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테이블 구성입니다. 화면 하나에 테이블 전체가 들어가지 않으니 위아래 두 부분으로 나누고, 공이 아래로 내려갈 때만 화면이 따라 내려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위아래 각각에 플리퍼가 따로 달려 있어서, 실제 핀볼대를 세로로 두 배 길게 만든 것 같은 구조가 됩니다.
어떤 게임인가
타임 스캐너(Time Scanner)는 세가가 1987년에 내놓은 아케이드 핀볼입니다. 하는 일은 핀볼 그대로입니다. 플리퍼로 공을 쳐 올려 범퍼와 타깃을 때리고 점수를 벌면서, 공이 아래로 빠지지 않도록 버팁니다. 조작은 좌우 플리퍼 버튼이 전부라 규칙 설명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다만 이 게임에는 테이블마다 달성 조건이 따로 있습니다. 점수만 벌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테이블이 요구하는 목표를 채워야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어떤 테이블은 특정 레인을 순서대로 통과해 글자를 완성해야 하고, 어떤 테이블은 타깃을 모두 쓰러뜨린 뒤 공을 정해진 구멍에 넣어야 합니다.
테이블은 넷이고, 처음에는 셋 중에서 고를 수 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앞의 셋을 깨야 열립니다. 마지막 테이블에는 벽돌 깨기를 닮은 요소가 섞여 있어서, 앞의 세 테이블과는 성격이 확실히 다릅니다.
처음 하면 막히는 곳
첫 번째 관문은 화면이 위아래로 나뉜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공이 위쪽에 있을 때는 아래 플리퍼를 아무리 눌러도 소용이 없고,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공이 어느 구역에 있는지 보지 않고 반사적으로 버튼을 누르면 공을 그냥 흘려보냅니다. 위쪽에서 공을 놓쳐 아래로 떨어질 때 화면이 따라 내려오니, 그 순간에 맞춰 손을 옮기는 타이밍을 익혀야 합니다.
두 번째는 조준입니다. 화면 핀볼은 실물보다 공이 빠르게 느껴지고, 플리퍼를 언제 올리느냐에 따라 공이 날아가는 각이 크게 달라집니다. 아무 때나 버튼을 누르면 공이 엉뚱한 데로 튀어 그대로 빠집니다. 공이 플리퍼 끝쪽에 닿을 때 올리면 멀리, 안쪽에 닿을 때 올리면 완만하게 나간다는 감각만 잡아도 생존 시간이 크게 늘어납니다.
세 번째는 조건 확인입니다. 목표를 모르고 그냥 치다 보면 점수는 오르는데 판이 끝나지 않습니다. 테이블에 켜지는 표시등을 눈여겨보면 지금 무엇이 남았는지 알 수 있고, 그것만 노려 치면 진행이 훨씬 빨라집니다.
세가와 1987년의 기판
1987년의 세가는 오락실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새 하드웨어를 밀던 회사 중 하나였습니다. 대형 체감형 기기로 이름을 알리는 한편, 일반 기판 위에서도 액션과 스포츠를 꾸준히 냈습니다. 이 게임은 그 일반 기판 계열 위에서 돌아가는데, 핀볼처럼 공 하나가 계속 튀는 그림에서는 화면이 얼마나 부드럽게 움직이느냐가 곧 게임의 질이 됩니다.
실제 핀볼과 비교하면 아쉬운 점은 분명 있습니다. 화면 핀볼은 공의 무게감이나 기계에서 오는 진동이 없고, 테이블을 살짝 밀어 공의 경로를 바꾸는 실물 핀볼 특유의 재미도 재현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실물이 못 하는 것을 합니다. 테이블을 통째로 바꾸고, 화면을 스크롤해 실제로는 만들기 어려운 크기의 판을 보여 줍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국내 오락실에서 핀볼은 익숙한 장르가 아니었습니다. 실물 핀볼대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그래서 이 게임이 흉내 내는 대상 자체가 손님들에게 낯설었습니다. 슈팅이나 액션처럼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눈에 보이는 게임이 아니어서, 놓여 있어도 지나치기 쉬운 물건이었습니다.
반대로 지금 해 보면 그 낯섦이 오히려 재미가 됩니다. 조작이 버튼 두 개뿐이라 부담이 없고, 한 판이 짧게도 길게도 갈 수 있어서 잠깐 붙어 보기에 알맞습니다. 첫 판은 목표를 잊고 공을 오래 살려 두는 것만 연습해 보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