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서지
파워 서지 (Power Surge) · 1988 · Vision Electronics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게임의 주인공이 사람도 우주선도 아니고 전기 불꽃인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이 게임이 그렇습니다. 화면은 전자 회로를 본떠 만들어져 있고, 플레이어는 그 회로 위를 달리는 불꽃이 되어 앞을 막는 저항을 부수며 나아갑니다. 목표는 회로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전류가 흐를 수 있게 길을 이어놓으면 그 판이 끝납니다. 미로를 도는 게임이라는 오래된 형식에 회로라는 옷을 입혀 나름의 개성을 만든 작품입니다.
파워 서지(Power Surge)는 1988년에 나온 미로형 아케이드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정해진 통로를 따라 이동하며 목표물을 처리하고, 동시에 자신을 노리는 적 불꽃들을 피해야 합니다. 조작은 4방향 레버와 버튼으로 간단해서, 규칙을 설명받지 않아도 몇 초 안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미로형 게임의 규칙
이 장르의 뼈대는 오래전에 완성되었습니다. 화면 전체가 하나의 미로이고, 그 안에 흩어진 목표를 모두 처리하면 다음 판으로 넘어갑니다. 그 사이 적들이 미로를 돌며 플레이어를 노립니다. 이 게임도 이 골격을 그대로 따르되, 목표를 '점' 대신 '회로를 완성하는 일'로 바꿔 놓았습니다.
미로형 게임에서 실력의 차이는 대부분 경로에서 갈립니다. 무작정 가까운 목표부터 처리하면 나중에 남은 목표들이 미로 반대편에 흩어져 있게 되고, 그것을 주우러 다니는 동안 적과 마주칠 확률이 크게 올라갑니다. 처음부터 한 방향으로 훑어 나가듯 도는 경로를 잡는 것이 기본입니다.
4방향 조작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대각선으로 도망칠 수 없기 때문에, 갈림길에서의 선택이 곧 생사가 됩니다. 갈림길에 도착하기 전에 어느 쪽으로 꺾을지를 이미 정해두어야 하고, 막다른 길에 들어가는 순간 대부분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회로라는 소재
이 게임을 다른 미로형 게임과 구분 짓는 것은 소재입니다. 배경이 회로판이고 주인공이 전류이며 장애물이 저항이라는 설정은,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엇을 하는 게임인지 짐작하게 만듭니다.
이런 소재 선택은 이 시기 아케이드에서 꽤 실용적인 전략이었습니다. 하드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그래픽에 한계가 있으니, 단순한 선과 도형으로 그려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소재를 고르는 것입니다. 회로는 원래 선과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이 조건에 잘 맞았습니다.
게임을 진행하며 길이 이어지고 마침내 전류가 통하는 순간의 연출은 이 게임이 노린 성취감입니다. 점을 다 먹었다는 것보다 회로를 완성했다는 쪽이 훨씬 그럴듯하게 들리고,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이유도 자연스러워집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실수는 적을 정면으로 상대하려는 것입니다. 미로형 게임에서 적은 대개 처리 대상이 아니라 회피 대상입니다. 잡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맞서면 통로 안에서 도망칠 곳을 잃습니다.
두 번째는 시야입니다. 화면이 한눈에 다 보이는 구조인데도 초보자는 자기 캐릭터 주변만 봅니다. 이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있는 통로가 아니라, 두세 갈림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입니다. 시선을 조금 앞에 두는 것만으로 생존 시간이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세 번째는 속도입니다. 급하게 몰아치면 잘못된 통로로 들어가기 쉽습니다. 미로형 게임은 빨리 도는 게임이 아니라 안전한 순서로 도는 게임이라, 한 박자 늦더라도 경로를 지키는 편이 결과가 좋습니다.
이 시기 미로 게임과 오락실 사정
1980년대 후반이면 미로형 게임의 전성기는 이미 지난 뒤였습니다. 오락실의 중심은 스크롤하는 액션과 슈팅으로 옮겨가 있었고, 고정 화면 미로 게임은 한 세대 전의 형식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시기에 나온 미로 게임들은 대체로 소재나 장치로 차별점을 만들려 했고, 이 게임의 회로라는 설정도 그런 시도로 읽힙니다.
이 무렵에는 큰 회사가 아니라도 기판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규칙이 단순하고 화면이 복잡하지 않은 게임은 개발 비용이 크지 않았고, 오락실 입장에서도 한 판이 짧아 회전이 빠른 게임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이 게임 역시 그런 조건에 잘 맞는 구성입니다.
같은 이름으로 상품을 걸고 하는 형태의 기계도 함께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회로를 완성한다는 목표가 명확하고 한 판이 짧다는 점이 그런 방식과 잘 맞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널리 볼 수 있던 기판은 아니지만, 규칙이 명확해 처음 잡아도 바로 이해되고, 미로형 게임 특유의 쫓기는 긴장감은 지금 해도 그대로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