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판타지 1
파이널 판타지 (Final Fantasy Japan REV 0a) · 1987 · Squ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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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만든 게임
제목의 파이널, 즉 마지막이라는 단어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당시 스퀘어는 경영이 어려웠고, 이 게임이 실패하면 회사를 접어야 할 상황이었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해져 왔습니다. 그런 각오로 내놓은 작품이 예상 밖으로 크게 성공하면서, 마지막이 아니라 수십 년 이어지는 시리즈의 첫 편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 게임에는 어딘가 절박한 밀도가 있습니다. 8비트 카트리지 안에 직업 시스템과 마법 체계, 배와 비행선까지 이어지는 세계 지도, 그리고 시간을 거스르는 결말까지 욱여넣었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파이널 판타지 1(Final Fantasy)은 스퀘어가 패미컴으로 내놓은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빛의 크리스털을 손에 든 네 명의 전사가 나타나 세상을 좀먹는 사악한 기운을 걷어낸다는 예언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플레이어는 시작할 때 파티 네 명의 직업을 직접 고릅니다. 전사, 시프, 몽크, 백마도사, 흑마도사, 적마도사 중에서 조합을 짜는데, 이 선택이 게임 전체의 난이도를 좌우합니다. 이후에는 마을과 던전을 오가며 몬스터와 턴제 전투를 치르고, 크리스털의 힘을 하나씩 되찾아 갑니다.
직업 조합이 곧 난이도
초보에게는 전사와 백마도사를 넣은 안정적인 조합이 권장됩니다. 전사는 맷집이 튼튼해 앞줄을 버티고, 백마도사는 회복을 책임집니다. 여기에 흑마도사를 넣으면 광역 마법으로 잡몹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몽크 넷 같은 극단적인 조합도 가능합니다. 초반에는 몹시 험난하지만 레벨이 오르면 맨손 공격력이 무섭게 치솟아 후반에는 오히려 편해집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만의 조합을 짜서 처음부터 다시 해 보는 재미가 이 게임에는 있습니다.
게임 중반에는 클래스 체인지가 열립니다. 조건을 만족하면 전사가 나이트가 되고 시프가 닌자가 되는 식으로 상위 직업으로 바뀌며, 새 장비와 마법을 쓸 수 있게 됩니다. 이 순간이 이 게임에서 가장 뿌듯한 대목 중 하나입니다.
네 개의 크리스털과 네 마리의 카오스
세계는 땅, 불, 바람, 물의 크리스털이 빛을 잃으면서 병들어 갑니다. 각 크리스털은 네 마리의 카오스에게 붙들려 있고, 이들을 차례로 쓰러뜨리는 것이 여정의 축입니다. 흙의 리치, 불의 마릴리스, 물의 크라켄, 바람의 티아마트가 그 넷입니다.
이동 수단이 하나씩 늘어나는 구조도 인상적입니다. 처음에는 걸어 다니다가 배를 얻어 바다를 건너고, 카누로 강을 거슬러 오르며, 마지막에는 비행선을 손에 넣어 세계 전체가 열립니다. 새 탈것을 얻을 때마다 지도가 확 넓어지는 감각은 이후 수많은 RPG가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최종 국면에서는 시간을 거슬러 2천 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모든 사건의 뒤에 있던 존재의 정체가 드러나는 구성은 8비트 게임의 이야기치고 대단히 야심찬 것이었습니다.
시리즈의 뼈대가 여기서 정해졌습니다
비행선, 초코보 이전의 세계 이동, 크리스털이라는 상징, 흑마도사와 백마도사라는 직업 구분까지 이후 시리즈에서 반복되는 요소 상당수가 이 작품에서 처음 자리를 잡았습니다. 파이널 판타지를 뒤에서부터 접한 사람이 1편을 켜 보면 낯익은 것투성이입니다.
국내에서는 패미컴 시절 일본어 화면 그대로 접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글을 다 읽지 못해도 지도를 헤매고 몬스터를 잡으며 진행할 수 있었던 덕에, 말이 통하지 않는 채로 끝까지 간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RPG라는 장르를 처음 알려 준 게임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