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 볼
파이어 볼 (Fire Ball Fm Work) · 1992 · FM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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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이 붙는 국산 폭탄 게임
1992년 국내 오락실에는 남의 게임을 흉내 낸 기판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두 명까지만 붙을 수 있었는데, 이 게임은 네 명이 동시에 달라붙을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오락실에 놓인 기계 한 대에 친구 넷이 매달려 서로 폭탄을 놓는 그림이 나온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꽤 매력적인 구성이었습니다.
그림체도 눈에 띕니다. 국산 모방작들이 대체로 투박했던 데 비해, 이 게임은 만화풍으로 동글동글하게 그려져 있어 훨씬 정돈된 인상을 줍니다. 흉내를 내더라도 겉모습만은 신경 썼다는 것이 보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파이어 볼(Fire Ball)은 격자로 나뉜 미로 안에서 폭탄을 놓아 상대와 적을 날려 버리는 액션 게임입니다. 폭탄은 놓고 나서 잠시 뒤 터지며 십자 방향으로 불길이 뻗어 나가는데, 그 불길에 닿는 것은 상대든 자기 자신이든 똑같이 당합니다.
조작은 레버로 상하좌우 이동, 버튼으로 폭탄 설치입니다. 아주 단순하지만 폭탄이 터지는 시간과 불길이 뻗는 거리를 머릿속으로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공간 판단이 계속 요구되는 게임입니다.
미로 안에는 부술 수 있는 블록과 부술 수 없는 블록이 섞여 있습니다. 부술 수 있는 블록을 폭탄으로 없애면 길이 열리고, 그 아래에서 강화 아이템이 나오기도 합니다.
강화 아이템과 약화 아이템
이 게임에는 좋은 아이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폭탄 개수를 늘려 주거나 불길을 길게 만들어 주는 아이템이 있는 반면, 오히려 능력을 깎는 것도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템이 나왔다고 무조건 달려가는 것이 좋은 판단은 아닙니다. 특히 상황이 유리할 때는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템을 주우러 갈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가 아이템 쪽으로 오는 것을 노려 그 길목에 폭탄을 놓는 편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불길이 너무 길어지는 것도 양날의 검입니다. 상대를 맞히기 쉬워지는 만큼 자기가 놓은 폭탄에 자기가 당하기도 쉬워집니다. 좁은 통로에서는 짧은 불길이 오히려 안전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기는 요령
가장 기본은 도망칠 길을 확보한 채 폭탄을 놓는 것입니다. 초보자가 가장 많이 죽는 이유는 막다른 골목에서 폭탄을 놓아 스스로를 가둬 버리기 때문입니다. 폭탄을 놓기 전에 어느 쪽으로 빠질지를 먼저 정해 두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블록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불길은 부술 수 없는 블록에 막히니, 블록 뒤에 서 있으면 안전합니다. 상대를 몰 때도 이 성질을 이용해 상대가 숨을 수 있는 블록을 미리 없애 두는 식으로 압박합니다.
네 명이 붙으면 정면 승부보다 관망이 유리한 국면이 많습니다. 다른 셋이 서로 붙어 싸우게 두고 구석에서 아이템을 챙기다가, 수가 줄어든 뒤에 나서는 것이 흔한 승리 공식입니다.
어디서 온 형식인가
이 게임의 형식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폭탄 액션 게임에서 왔습니다. 격자 미로, 십자로 터지는 폭탄, 부술 수 있는 블록과 그 아래 숨은 아이템까지 규칙이 거의 그대로이고, 화면에 나오는 제목 글씨체마저 원본을 따라 그렸습니다.
이런 모방은 당시 국내 오락실 기판 시장에서 흔한 일이었습니다. 정식 판권을 사 오는 비용이 부담스럽고, 애초에 그런 거래 통로가 잘 정비되어 있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잘되는 게임을 보고 비슷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하나의 방식이었습니다.
만든 곳인 FM 워크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이 게임 외에 어떤 작품을 냈는지, 언제 세워지고 언제 사라졌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시절 국내에는 이렇게 기판 한두 종을 내고 사라진 작은 회사가 많았고, 이제 와서 흔적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문방구 앞의 기억
이런 국산 기판은 대형 오락실보다 동네 오락실이나 문방구 앞 기계에 많이 들어갔습니다. 값이 싸고 여러 명이 붙을 수 있으니 회전율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친구 넷이 한 기계에 붙어 서로 폭탄을 놓고 웃던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기계가 일본 원작이 아니라 이런 국산 기판이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원본만큼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여럿이 붙어 노는 재미는 충분히 살아 있는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