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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라치

파파라치 (Paparazzi) · 1996 · Yun 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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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후반 오락실 한구석에는 이른바 땅따먹기 퍼즐이라 불리던 기판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화면 위를 선으로 갈라 영역을 차지하면 그 아래 깔린 그림이 드러나는 구조인데, 규칙 자체는 1981년 게임 큐릭스에서 시작된 아주 오래된 형식입니다. 파파라치는 그 형식을 1996년 국내 업체가 다시 만든 작품이고, 당시 이 계열 기판이 얼마나 많이 돌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파파라치(Paparazzi)는 사각형 판의 가장자리를 따라 움직이다가 안쪽으로 선을 그어 영역을 잘라내는 퍼즐 게임입니다. 잘라낸 영역이 화면의 일정 비율을 넘으면 그 판이 끝나고 다음 그림으로 넘어갑니다. 안쪽에는 돌아다니는 적이 있어서, 선을 긋는 도중에 그 선이나 캐릭터를 건드리면 목숨이 줄어듭니다. 조작은 레버와 버튼 하나로 아주 단순합니다.

파파라치 퍼즐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6)

땅따먹기 퍼즐의 계산법

이 장르는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확률 계산 게임에 가깝습니다. 선을 길게 그으면 한 번에 많은 영역을 차지할 수 있지만, 긋는 동안 적에게 걸릴 위험도 그만큼 길어집니다. 짧게 자주 끊으면 안전하지만 목표 비율을 채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간 제한이 있는 판에서는 그것대로 위험합니다.

그래서 익숙한 사람들은 판을 두 단계로 나눠 씁니다. 처음에는 안전하게 짧은 선을 여러 번 그어 넓은 부분을 잘라내고 적이 움직일 공간을 좁힙니다. 공간이 좁아지면 적의 움직임이 예측하기 쉬워지고, 그때 한 번에 크게 잘라내는 승부수를 던집니다. 처음부터 크게 노리는 것과 결과는 비슷해 보여도 성공률이 전혀 다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적의 궤적을 읽는 일입니다. 대개 적은 벽에 부딪히면 튕겨 나가는 식으로 움직이므로, 몇 초만 지켜보면 어디로 갈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적이 반대편 끝으로 향하는 순간이 가장 안전한 타이밍이고, 그때 긋기 시작해야 합니다. 아무 때나 버튼을 누르는 사람과 기다렸다 누르는 사람의 생존 시간이 몇 배씩 차이 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첫 번째로 막히는 것은 자기가 그린 선입니다. 이 장르에서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은 적이 아니라 자기 선입니다. 안쪽으로 들어가서 방향을 이리저리 꺾다 보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기 선을 밟게 되고 그대로 죽습니다. 안으로 들어갈 때는 되도록 곧게 가고, 꺾더라도 한 번만 꺾는 편이 안전합니다.

두 번째는 목표 비율 근처에서의 조급함입니다. 거의 다 채웠을 때 남은 공간이 좁아지면서 적이 밀도 높게 움직이기 때문에, 마지막 몇 퍼센트가 가장 어렵습니다. 여기서 급하게 큰 선을 그으려다 죽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이 구간에서는 가장자리에 붙어 아주 짧게 여러 번 끊는 것이 정답입니다.

세 번째는 구석을 놓치는 것입니다. 판 모서리 쪽은 두 방향이 이미 벽으로 막혀 있어서 짧은 선으로도 꽤 넓은 영역을 잘라낼 수 있습니다. 초보는 화면 한가운데를 크게 가르려 하지만, 실제로 효율이 좋은 자리는 모서리입니다.

국내 기판 산업이라는 배경

이 게임을 만든 곳은 90년대에 아케이드 기판을 여러 편 내놓던 국내 업체입니다. 당시 국내 개발사들은 대형 대전 격투나 슈팅처럼 개발비가 많이 드는 장르 대신, 규칙이 검증되어 있고 개발 규모가 작은 퍼즐 계열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땅따먹기 퍼즐은 그 조건에 정확히 맞았습니다. 규칙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 설명이 필요 없고, 판을 넘길 때마다 다른 그림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계속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 이 계열 기판들은 이름만 다르고 구조는 거의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보면 비슷비슷하다는 인상을 받기 쉽지만, 당시 오락실 운영자 입장에서는 값이 싸고 회전이 빠른 기판이 필요했고, 손님 입장에서도 몇 분 만에 결과가 나오는 게임이 부담 없었습니다.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진 자리였던 셈입니다.

지금 해 보면

이 장르의 좋은 점은 세월을 거의 안 탄다는 것입니다. 조작이 레버와 버튼 하나뿐이고 규칙이 한 문장으로 설명되며,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곧바로 실력으로 이어집니다. 처음 몇 판은 자기 선을 밟아 죽는 것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적의 위치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기면 생존 시간이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목표를 조금씩 올려 가며 하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에는 한 판을 넘기는 것, 그다음에는 목숨을 안 잃고 넘기는 것, 나중에는 목표 비율보다 훨씬 많이 잘라내 점수를 키우는 것으로 옮겨갑니다. 판을 넘길수록 적이 늘고 움직임이 빨라지므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재는 재미도 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