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논 볼
캐논 볼 (Cannon Ball Yun Sung Horizontal) · 1995 · Yun 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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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깨기와 퍼즐 게임을 섞으면
90년대 중반 오락실에는 국산 기판이 제법 돌았습니다. 큰 회사가 만든 유명한 게임 사이에 이름을 처음 듣는 게임이 한두 대씩 끼어 있었고, 그중 상당수가 국내 회사가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 게임도 그런 자리에 놓여 있던 물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발상입니다. 아래에서 공을 튕겨 올리는 벽돌깨기의 조작에, 같은 색을 모아 없애는 퍼즐의 규칙을 겹쳤습니다. 두 가지 다 이미 익숙한 것이라 처음 보는 사람도 화면만 보면 무엇을 해야 할지 대충 짐작합니다.
색을 맞춰 세 개를 떨어뜨립니다
캐논 볼(Cannon Ball)은 화면 위쪽에 매달린 공들을 없애 나가는 퍼즐 게임입니다. 아래쪽에서 공을 쏘아 올려 같은 색 공에 붙이고, 같은 색이 세 개 이상 모이면 그 덩어리가 떨어져 사라집니다. 화면에 있는 공을 모두 지우면 다음 판으로 넘어갑니다.
조작은 단순합니다. 좌우로 발사 위치를 옮기고 버튼으로 쏩니다. 쏘는 방향은 곧장 위로 보내는 것 말고도 좌우로 비스듬히 꺾어 보낼 수 있어서, 벽에 튕겨 안쪽 깊은 곳의 공에 붙이는 각도 계산이 이 게임의 핵심입니다. 정면으로는 닿지 않는 자리를 각도로 뚫는 순간이 가장 시원합니다.
막히면 폭탄이 있습니다
퍼즐이 꼬여서 더 이상 손댈 곳이 없어 보일 때를 대비한 장치도 있습니다. 위급할 때 쓸 수 있는 폭탄이 준비되어 있어서, 잘못 쌓아 올린 덩어리를 한 번에 정리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무한정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 정말 막혔을 때를 위해 남겨 두는 편이 좋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아무 데나 붙이는 것입니다. 같은 색이 두 개까지만 모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렇게 쌓인 공들이 나중에 통로를 막습니다. 세 개를 만들 자리가 없으면 차라리 가장자리로 흘려보내 안쪽 통로를 열어 두는 편이 낫습니다.
각도를 익히는 것도 요령입니다. 비스듬히 쏘면 벽에서 한 번 튕기는데, 이 반사 지점을 눈으로 잡을 수 있게 되면 화면 구석에 박힌 공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처음 몇 판은 각도만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던져 보는 것이 빠릅니다.
가로판과 세로판, 그리고 점수 이야기
이 게임은 화면을 가로로 놓은 판과 세로로 놓은 판이 따로 있습니다. 오락실 기계마다 모니터를 세워 두기도 하고 눕혀 두기도 했으니, 두 가지를 다 준비해 어느 기계에나 넣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같은 게임이지만 화면 비율이 달라지면 공이 쌓인 모양을 읽는 느낌도 조금 달라집니다.
점수 쪽에는 알려진 문제가 있습니다. 판을 넘길 때 쌓아 둔 점수가 초기화되어 버려서, 아무리 잘해도 높은 점수를 남기기 어렵습니다. 큰 회사의 검수를 거치지 않은 기판에서 흔히 나오던 종류의 허점인데, 덕분에 이 게임은 점수를 다투기보다 어디까지 가느냐를 다투는 게임이 되었습니다.
판이 넘어갈수록 시작할 때 쌓여 있는 공의 양이 늘고 색의 종류도 늘어납니다. 색이 두세 가지일 때는 대충 쏴도 어떻게든 맞지만, 색이 늘면 원하는 색이 손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생깁니다. 그동안 화면은 계속 좁아지니, 다음에 나올 공을 미리 보고 두 수 앞을 계획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윤성이라는 국산 기판 회사
만든 곳은 국내 회사인 윤성입니다. 90년대에 아케이드 기판을 꾸준히 내놓던 몇 안 되는 국내 제작사 가운데 하나로, 퍼즐과 액션을 오가며 여러 편을 만들었습니다. 이 회사 이름을 몰라도 그 시절 오락실을 다녔다면 이 회사가 만든 게임 앞에 한 번쯤 앉아 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 국산 기판은 값이 쌌습니다. 일본에서 들여오는 인기 기판은 비싸고 물량도 한정되어 있었으니, 작은 동네 오락실은 국산 기판으로 자리를 채웠습니다. 유명작을 참고한 흔적이 짙은 게임이 많았던 것도 그 시절 사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기계는 두 사람이 앉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번갈아 가며 각자의 판을 풀어 나가는 방식이라 옆 사람이 어디까지 갔는지 자꾸 신경 쓰이고, 그것만으로도 혼자 할 때와는 다른 긴장이 생깁니다.
동네 오락실 구석에 있던 게임
이 게임은 대형 오락실보다 문방구 앞이나 동네 구멍가게 옆 작은 오락실에서 만나기 쉬웠습니다. 대전 격투 기계 앞에 사람이 몰려 있을 때, 순서를 기다리면서 옆자리에 앉아 한 판씩 하던 종류의 게임입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만듦새의 거친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도 규칙 자체는 잘 굴러가고, 한 판이 짧아 부담이 없습니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아케이드 게임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확인해 보는 재미도 함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