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2 죄
페르소나 2: 죄 (Persona 2 Innocent Sin) · 1999 · At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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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그대로 현실이 되는 도시
이 게임의 세계에는 기묘한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퍼진 소문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어딘가에서 시작된 근거 없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니다가, 충분히 많은 사람이 믿게 되면 그것이 현실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도시에서는 아무 데서나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 규칙은 게임의 진행 방식에도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정보를 파는 이에게 돈을 주고 소문을 퍼뜨리면, 실제로 그 내용대로 세상이 바뀝니다. 특정 가게에서 희귀한 물건을 판다는 소문을 퍼뜨리면 그 물건이 실제로 진열되는 식입니다. 이 장치 하나가 이 작품을 다른 RPG와 완전히 구분해 놓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페르소나 2 죄(Persona 2: Innocent Sin)는 현대 도시를 무대로 한 턴제 RPG입니다.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고, 학교와 거리와 지하 시설을 오가며 소문의 근원을 좇습니다. 지도를 이동하며 이야기를 진행하고, 적을 만나면 전투 화면으로 넘어가 명령을 내리는 구조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페르소나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자기 안의 또 다른 인격을 불러내 싸우는 설정인데, 이 페르소나가 곧 마법과 능력을 제공합니다. 어떤 페르소나를 누구에게 붙이느냐에 따라 그 인물이 할 수 있는 일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악마와 대화한다
이 게임의 전투에는 싸우지 않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적으로 나온 악마들에게 말을 거는 것입니다. 파티원마다 대화 방식이 다르고, 웃기거나 화내거나 조르는 식의 행동을 조합해 상대의 기분을 움직입니다. 잘하면 상대가 기뻐하거나 흥미를 보이고, 그 대가로 아이템이나 카드를 주고 물러갑니다.
이 카드가 중요합니다. 모은 카드로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무작정 다 때려잡는 것보다, 원하는 악마와 대화해 카드를 얻는 쪽이 성장에 유리합니다. 악마마다 좋아하는 반응이 정해져 있어, 어떤 조합이 통하는지 알아 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미가 됩니다. 파티원 둘 이상이 함께 말을 거는 합동 대화도 있어, 누구를 데리고 다니느냐가 여기에도 영향을 줍니다.
페르소나를 다루는 법
페르소나는 계속 쓰면 성장하면서 새 기술을 배웁니다. 그리고 각 인물에게는 잘 맞는 속성이 있어, 궁합이 좋은 페르소나를 붙이면 더 빨리 자랍니다. 다만 한 사람이 여러 페르소나를 갈아 끼울 수 있으므로, 상황에 따라 바꿔 가며 쓰는 것이 기본입니다.
전투에서는 속성 상성이 크게 작용합니다. 불에 약한 적에게 불 마법을 쓰면 피해가 크게 늘고, 반대로 흡수하는 적에게 쓰면 오히려 회복시켜 줍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적에게는 이것저것 시험해 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또 두 사람 이상이 특정 기술을 연달아 쓰면 합체기가 나가는데, 이게 이 시리즈 전투의 화력을 책임지는 부분입니다. 어떤 조합이 어떤 합체기로 이어지는지 찾아내는 것이 후반의 핵심입니다.
무거운 이야기
이 작품의 이야기는 밝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의 어떤 사건과 그로 인한 죄책감이 중심에 놓여 있고, 등장인물들은 각자 잊고 있던 기억과 마주하게 됩니다. 소문이 현실이 된다는 설정도 결국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전투보다 대화 장면이 길게 이어지는 구간이 많습니다. 진행 속도가 느리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 시리즈가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가 바로 그 이야기 쪽에 있습니다. 인물들이 서로에게 하는 말이 후반으로 갈수록 무게를 얻습니다.
지금 시작한다면
시리즈의 후속작들과 비교하면 이 작품은 진행이 느리고 안내가 친절하지 않은 편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는 구간이 있고, 전투 속도도 요즘 기준으로는 답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이후 작품들에는 없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악마와 직접 대화해 카드를 얻는 방식과, 소문을 퍼뜨려 세상을 바꾸는 장치가 그렇습니다.
시리즈를 뒤에서부터 접한 사람에게 특히 흥미로울 것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초기 시스템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처음 몇 시간만 넘기면 이 도시의 분위기에 금세 빠져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