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팅
플로팅 (Plotting World SET 1) · 1989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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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을 쌓지 않고 깎아 냅니다
퍼즐 게임이라고 하면 위에서 내려오는 것을 받아 쌓는 그림이 먼저 떠오릅니다. 이 게임은 반대입니다. 화면 오른쪽에 블록 더미가 이미 쌓여 있고, 나는 왼쪽에서 블록 하나를 손에 들고 그것을 던져 더미를 깎아 냅니다.
던진 블록은 같은 무늬가 이어지는 동안 계속 지우며 파고들다가, 다른 무늬를 만나면 멈추고 그 자리의 블록과 자리를 바꿔 내 손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던질 때마다 내가 다음에 들고 있을 블록이 정해집니다. 지금 한 번의 선택이 다음 선택을 결정하는 구조가 이 게임의 전부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플로팅(Plotting)은 화면 한쪽의 블록 더미를 정해진 개수 이하로 깎아 내면 판이 끝나는 퍼즐입니다. 조작은 아주 적습니다. 레버로 위아래 높이를 맞추고 버튼으로 던지는 것, 이 둘뿐입니다.
더미 위쪽에는 비스듬한 벽이 있습니다. 블록을 위로 던지면 이 벽에 튕겨 더미의 위쪽으로 떨어집니다. 정면에서는 닿지 않던 자리를 위에서 노릴 수 있게 해 주는 장치이고, 어려운 판일수록 이 튕기기를 얼마나 잘 쓰느냐가 답이 됩니다.
판마다 제한 시간이 있습니다. 잘못 던져 같은 무늬가 아닌 곳에 맞으면 블록이 그냥 되돌아오고 시간만 깎입니다. 조용해 보이지만 실은 계속 쫓기는 게임입니다.
한 수 앞을 보는 게임
이 게임의 요령은 지금 무엇을 지울지가 아니라 다음에 무엇을 들게 될지를 보는 것입니다. 던진 블록이 멈추는 자리의 블록이 내 손으로 오니, 눈앞의 세 개를 지우자고 던졌다가 아무 데도 쓸 데 없는 무늬를 손에 쥐게 되는 일이 흔합니다.
그래서 좋은 수는 대개 두 가지 조건을 함께 만족합니다. 지금 여러 개를 지우면서, 돌아오는 블록도 다음 자리에 쓸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둘이 맞아떨어지는 자리를 찾는 것이 이 퍼즐의 핵심이고, 익숙해지면 더미를 볼 때 지울 곳이 아니라 이어지는 두세 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같은 무늬가 나란히 붙어 있으면 한 번에 여러 개가 지워지고 점수도 더 붙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하나씩 걷어 내기보다, 조금 참았다가 뭉쳐 있는 곳을 한 번에 치는 편이 시간과 점수 양쪽에서 낫습니다.
막히는 판
초반 판은 무늬 종류가 적고 더미도 얕아서 아무렇게나 던져도 풀립니다. 어려워지는 것은 무늬가 늘고 더미 모양이 복잡해지면서부터입니다. 특히 한 무늬가 더미 깊숙한 곳에 하나만 박혀 있는 배치가 고약합니다. 그 앞을 먼저 걷어 내야 하는데, 걷어 내는 과정에서 손에 든 블록이 계속 바뀌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위쪽 벽에 튕기는 길을 찾아보는 것이 답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면으로 뚫기 어려운 자리는 위에서 떨어뜨려 접근합니다. 이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면 같은 판에서 계속 시간을 다 쓰게 됩니다.
또 하나 자주 하는 실수는 조급하게 던지는 것입니다.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보이니 손이 먼저 나가는데, 빗나가면 시간이 더 깎여서 오히려 손해입니다. 몇 초 멈춰 서서 더미를 보고 던지는 편이 결과가 좋습니다.
타이토의 조용한 퍼즐
1989년의 타이토는 오락실에 여러 갈래의 게임을 내놓던 회사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퍼즐 쪽에 남긴 것이 적지 않은데, 이 게임은 그 계열에서도 유난히 조용한 축입니다. 화면은 단정하고 소리도 요란하지 않으며, 화려한 연출 대신 규칙 하나를 끝까지 파고듭니다.
일본과 서양에서 제목이 달랐고, 가정용 기기로도 여러 갈래로 옮겨졌습니다. 컴퓨터 쪽으로도 많이 나가서, 오락실에서보다 집에서 이 게임을 만난 사람이 더 많을 정도입니다. 어느 판이든 던지고 되돌아오는 그 규칙만큼은 그대로입니다.
같은 시기 오락실 퍼즐들이 대개 떨어지는 것을 받아 처리하는 방식이었던 것과 견주면, 던져서 깎아 낸다는 발상 자체가 뚜렷하게 다릅니다. 손이 빠를 필요가 거의 없고 대신 한 수를 잘 골라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국내 오락실에서 이 게임은 흔한 기판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시기 국내 오락실을 채운 퍼즐은 대개 여럿이 붙어 대전으로 즐기는 쪽이었고, 이렇게 혼자 조용히 머리를 쓰는 게임은 회전이 느려 자리를 얻기 어려웠습니다.
대신 이 게임을 아는 사람들은 대개 오래 붙잡고 있던 쪽입니다. 규칙이 단순하고 한 판이 짧아 시작하기 쉬운데, 몇 판 지나면 자기가 왜 막혔는지를 알게 되고 그 순간부터 다시 하게 되는 종류의 퍼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해 봐도 감각은 그대로입니다. 시끄러운 것을 잠깐 내려놓고 한 수씩 생각하며 던지고 싶을 때, 이만큼 담백하게 맞아떨어지는 오락실 퍼즐이 많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