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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스토리

B.C. 스토리 (B C Story SET 1) · 1997 · Sem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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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기판이 오락실에 깔리던 시절

1990년대 후반 오락실에는 일본 대작만 있던 게 아닙니다. 한쪽 구석, 대개 문 가까운 자리나 문방구 앞 한두 대짜리 오락기에는 국내 회사가 만든 기판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화면을 켜면 낯선 회사 로고가 뜨고, 어디서 본 것 같으면서도 정확히 같지는 않은 그림이 나오는 게임들이었습니다. B.C. 스토리도 그런 부류입니다.

이런 게임들은 대작과 정면으로 겨루지 않았습니다. 기판 값이 싸고, 한 판이 짧고, 규칙이 단순해서 지나가던 아이가 백 원을 넣고 몇 분 놀다 가기에 알맞았습니다. 오락실 주인 입장에서는 비싼 대전격투 기판 한 대를 놓는 대신 이런 기판 여러 대를 돌리는 편이 계산이 맞을 때가 있었습니다.

B.C. 스토리 기타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7)

어떤 게임인가

B.C. 스토리(B.C. Story)는 원시 시대를 소재로 한 오락실 게임으로, 짧게 끝나는 승부를 번갈아 치르며 둘이 겨루는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한 판이 길게 이어지는 대작들과 달리 승부가 금방 나기 때문에,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번갈아 붙기에 알맞습니다. 조작은 방향과 버튼 몇 개로 끝나고, 한 번 해 보면 무엇을 하면 되는지 바로 감이 옵니다.

원시 시대라는 소재는 이 시절 게임에서 인기가 있었습니다. 배경 설명이 필요 없고, 몽둥이와 공룡과 동굴만 그려 놓으면 누구나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캐릭터도 어렵게 만들 필요가 없어서, 머리에 뼈다귀를 꽂은 원시인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개발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가 고르기 좋은 소재였던 셈입니다.

짧은 승부의 재미

이런 구성의 장점은 진입 문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전격투처럼 커맨드를 외울 필요도, 슈팅처럼 패턴을 익힐 필요도 없습니다. 처음 앉은 사람과 백 판 한 사람의 실력 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친구와 붙어도 일방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락실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노는 데 이만한 형식이 없었습니다.

대신 혼자 오래 붙잡고 있기에는 얇습니다. 같은 승부가 반복되면 금방 익숙해지고, 그다음에는 딱히 더 파고들 여지가 남지 않습니다. 이런 게임은 원래 혼자 오래 하라고 만든 물건이 아니라, 둘이 짧게 붙으라고 만든 물건입니다. 지금 해 볼 때도 옆에 사람을 하나 앉히면 인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세미콤이라는 회사

이 게임을 만든 세미콤은 1990년대 국내 아케이드 기판 업계에서 꾸준히 이름이 보이던 회사입니다. 대전격투부터 퍼즐, 액션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여러 편을 냈고, 그중 몇몇은 국내 오락실과 문방구 오락기에서 제법 오래 돌아갔습니다. 규모가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그 시절 국내에서 오락실 기판을 실제로 만들어 팔던 몇 안 되는 곳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런 회사의 게임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그림과 소리에서 일본 유명작의 영향이 짙게 보이고, 구성은 최대한 단순하게 잡혀 있으며, 난이도는 동전을 자주 넣게 하는 방향으로 맞춰져 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완성도를 따지면 아쉬운 구석이 많지만, 당시 국내 여건에서 기판 하나를 온전히 만들어 유통까지 했다는 사실 자체가 만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오락실의 형편

이 게임이 나온 시기는 국내 오락실 산업이 정점을 지나 흔들리던 무렵입니다. 대전격투 열기가 한풀 꺾였고, 가정용 콘솔과 개인용 컴퓨터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오락실에 오던 손님이 집에 머무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제 위기까지 겹치면서 문을 닫는 가게가 속출했습니다.

그런 형편에서 국산 기판은 값싸게 자리를 채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신작 대작 기판은 비싸서 못 들이고, 그렇다고 빈자리를 놀릴 수는 없으니 저렴한 기판을 들여놓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게임들은 오락실의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에 가까웠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화면을 지나쳐 봤지만 제목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문, 그런 자리에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보면

이런 게임을 지금 꺼내 보는 이유는 완성도 때문이 아닙니다. 그 시절 오락실의 공기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촌스러운 글꼴, 어딘가 어긋난 색감, 반복되는 짧은 음악 같은 것들이 오히려 그때의 가게 안 풍경을 되살립니다. 대작만 기억에 남는다면 그 공간의 절반은 사라진 셈입니다.

처음 잡는 사람에게 권할 방식은 간단합니다. 혼자 진지하게 파고들기보다 옆에 누가 있을 때 몇 판 붙어 보는 것입니다. 규칙을 몰라도 화면을 보면서 배울 수 있고, 승부가 금방 나서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그게 이 게임이 원래 놓여 있던 자리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