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돈파치 대왕생
도돈파치 대왕생 (Dodonpachi Iii World 2002 05 15 Master Ver) · 2002 · Cave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화면을 뒤덮은 분홍색 탄이 격자처럼 촘촘하게 밀려 내려오는데, 그 사이에 사람 한 명이 통과할 만한 틈이 반드시 하나는 있습니다. 도돈파치 대왕생은 그 틈을 믿고 몸을 들이미는 게임입니다. 처음 보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벽처럼 보이지만, 자기 기체의 판정점이 얼마나 작은지 알고 나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게임이 탄막 슈팅의 대표작으로 남은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도돈파치 대왕생(Dodonpachi DaiOuJou)은 케이브가 만든 종스크롤 탄막 슈팅으로, 돈파치에서 시작된 시리즈의 흐름을 이어받은 작품입니다. 플레이어는 전투기 한 대를 조종해 위에서 쏟아지는 적기와 그들이 뿌리는 탄을 피하면서 화면 위쪽으로 계속 사격을 퍼붓습니다. 목표는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적을 끊기지 않게 연달아 부수며 점수를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샷과 레이저, 두 개의 사격을 오가는 조작
조작은 8방향 레버에 버튼 두어 개가 전부지만, 그 안에서 할 일이 많습니다. 사격 버튼을 연타하듯 누르면 넓게 퍼지는 일반 샷이 나가고, 같은 버튼을 꾹 누르고 있으면 좁고 강한 레이저로 바뀝니다. 이때 기체의 이동 속도도 함께 느려집니다.
이 속도 변화가 핵심입니다. 빠른 이동은 넓게 벌어진 탄 사이를 크게 가로지를 때 쓰고, 레이저를 눌러 느려진 상태는 탄이 몸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갈 때 미세하게 위치를 조정하는 데 씁니다. 초보자는 대개 빠른 이동만 쓰다가 과하게 움직여서 옆에 있던 탄에 맞습니다. 레이저를 눌러 속도를 죽이고 아주 조금씩만 움직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첫 관문입니다.
또 하나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피격 판정 범위입니다. 화면에 보이는 기체 그림 전체가 맞는 게 아니라, 그 한가운데 있는 점 하나만 맞습니다. 날개가 탄을 관통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몸으로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피할 수 있는 탄도 겁이 나서 피하지 못합니다.
하이퍼를 언제 쓰느냐로 갈리는 판
이 작품을 앞선 시리즈와 구분 짓는 것은 하이퍼 시스템입니다. 적을 부수면 하이퍼 아이템이 떨어지고, 이것을 충분히 모은 뒤 버튼을 누르면 화면에 있던 탄이 한꺼번에 지워지면서 잠깐 무적이 되고, 그동안 사격이 비정상적으로 굵고 넓어집니다.
문제는 하이퍼를 켜는 순간 적의 공격도 함께 사나워진다는 점입니다. 살자고 켠 하이퍼가 오히려 더 빽빽한 탄을 불러오는 구조라, 아무 데서나 켜면 도리어 위험합니다. 잘하는 사람은 안전한 구간에서 미리 켜서 점수를 끌어올리고, 위험한 구간은 하이퍼 없이 맨몸으로 피해 넘깁니다.
하이퍼 도중 버튼을 한 번 더 누르면 폭탄이 터지면서 하이퍼가 끊깁니다. 급할 때 쓰는 마지막 수단이지만, 하이퍼를 스스로 날려버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폭탄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잠깐 탄을 흡수하는 상태가 되어, 구석에 몰렸을 때 빠져나갈 틈을 만들어 줍니다. 이 세 가지 쓰임새를 상황에 따라 나눠 쓰는 것이 이 게임의 깊이입니다.
어디서 막히는가
처음 하는 사람은 대개 초반 스테이지를 무난히 넘기다가 중반부터 갑자기 벽에 부딪힙니다. 탄의 개수 자체보다도, 탄이 나가는 방향이 플레이어 위치를 따라오는 조준탄으로 바뀌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조준탄은 제자리에 서 있으면 절대 못 피하고, 옆으로 조금씩 흘리듯 움직여 줘야 합니다.
보스전에서는 화면 아래쪽 구석에 붙어 있으려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구석은 도망갈 방향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자리라, 탄이 두꺼워지는 순간 그대로 갇힙니다. 화면 아래 중앙 부근에서 좌우로 여유를 두고 서는 편이 훨씬 오래 버팁니다.
죽어서 잔기를 잃으면 화력이 떨어지고, 화력이 떨어지면 적을 못 부수니 탄이 더 오래 남아 다시 죽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 계열 게임은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집니다. 목숨이 하나 남았을 때는 점수를 포기하고 생존만 노리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케이브라는 회사와 그 시절 슈팅
케이브는 1990년대 중반에 소수 인원으로 출발해 슈팅 게임 한 장르에 집중한 회사입니다. 슈팅이 이미 사양 장르 취급을 받던 시기에, 오히려 탄을 극단적으로 늘리고 대신 피격 판정을 아주 작게 만드는 방향으로 장르를 다시 설계했습니다. 지금 흔히 말하는 탄막 슈팅의 문법이 이 계보에서 다듬어졌습니다.
이 작품은 기존 케이브 기판이 아니라 다른 회사의 기판을 빌려 쓴 시기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같은 시리즈 안에서도 사운드나 연출의 결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데, 그 점이 오히려 특유의 건조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이 계열 게임은 구경거리에 가까웠습니다. 한 판에 몇십 분씩 붙어 있으면서 죽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뒤에 사람이 줄줄이 붙어서 구경했고, 그 사람이 나가고 나면 남은 판을 이어 받아 해 보다가 첫 스테이지에서 죽는 일이 흔했습니다.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격차가 이렇게까지 크게 벌어지는 장르는 드뭅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세월이 흘렀지만 이 게임의 조작감은 여전히 날이 서 있습니다. 레버를 미는 만큼 정확히 움직이고, 탄이 맞는 순간과 아닌 순간이 흐릿하지 않습니다. 어렵다는 인상과 달리 규칙 자체는 매우 정직해서, 죽었을 때 왜 죽었는지가 늘 분명합니다.
처음 잡는다면 점수는 아예 잊고 1스테이지를 다섯 번 반복해 보는 것을 권합니다. 같은 구간을 반복하면 탄이 무작위가 아니라 정해진 순서로 나온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순간부터 이 게임은 반사신경 싸움이 아니라 외우고 준비하는 게임으로 바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