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더 II
디펜더 II (Defender Ii USA) · 1988 · HAL Labora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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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팅 게임인데 화면 오른쪽으로 자동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왼쪽으로 가고 싶으면 기체를 돌려 왼쪽으로 날아갑니다. 행성 지표면은 고리처럼 이어져 있어서 한 방향으로 계속 날면 결국 출발점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 가장 먼저 익혀야 하는 것은 사격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입니다. 화면 위쪽에 붙어 있는 작은 레이더가 전장 전체를 보여 주는데, 이 레이더를 읽지 못하면 아무리 총을 잘 쏴도 판이 끝나지 않습니다.
디펜더 II(Defender II)는 지상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외계인의 납치로부터 지켜내는 슈팅 게임입니다. 일본에서는 스타게이트라는 이름으로 나왔고, 서양판에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적 편대 가운데 랜더라고 부르는 유형은 지표면으로 내려와 사람을 낚아채 위로 끌고 올라갑니다. 화면 맨 위까지 끌려가면 그 적은 훨씬 사납고 빠른 형태로 변합니다. 지상의 사람이 전부 사라지면 행성 자체가 폭발하고, 남은 스테이지는 발판 없는 우주 공간에서 치르게 됩니다.
한 판의 흐름
라운드가 시작되면 화면에는 사람 열 명과 여러 종류의 적이 배치됩니다. 목표는 적을 전부 없애는 것이지만, 실질적인 목표는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적이 사람을 들고 올라가는 것을 발견하면 곧장 그쪽으로 날아가 적만 쏘아 맞혀야 합니다. 사람은 떨어지면서 죽을 수 있으므로, 적을 격추한 뒤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을 기체로 받아 지면 가까이 데려다 놓아야 합니다. 사람을 안은 채 내려가 놓아 주면 점수가 크게 붙습니다.
무기는 기본 사격 외에 화면 전체를 쓸어 버리는 스마트밤이 있고, 위기 상황에서 임의의 위치로 순간 이동하는 하이퍼스페이스가 있습니다. 하이퍼스페이스는 진짜 마지막 수단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적 한복판에 떨어질 수도 있어서, 쓰고도 그대로 죽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스타게이트가 더한 것
전작에 없던 요소가 화면 한쪽에 놓인 게이트입니다. 여기로 들어가면 사람이 위험에 처한 지점으로 즉시 이동합니다. 위험한 곳이 없을 때 들어가면 앞쪽 라운드로 건너뛰기도 합니다. 넓은 지표면을 왕복하느라 시간을 다 쓰는 이 게임에서, 게이트는 단순한 편의 장치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이동 수단입니다. 게이트의 위치를 항상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성적 차이가 큽니다.
적의 종류도 늘었습니다. 사람을 노리는 랜더, 직선으로 돌진하는 유형, 무리 지어 몰려오는 유형, 격추하면 잘게 흩어져 오히려 위험해지는 유형이 섞여 나옵니다. 뒤로 갈수록 화면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적 수가 늘어나서, 한 방향만 보고 있으면 반대쪽에서 들어온 적에게 그대로 부딪힙니다.
어디서 막히는가
이 게임이 어렵다고 소문난 이유는 명확합니다. 조작이 관성으로 움직이고, 방향 전환에 시간이 걸리며, 시야가 좁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범위는 전장의 일부일 뿐이라 위협은 대부분 화면 밖에서 옵니다. 초보자가 가장 흔하게 무너지는 순간은 사람 한 명을 구하려고 한 곳에 오래 머무르다가, 반대편에서 사람들이 전부 납치되어 행성이 폭발해 버리는 경우입니다.
요령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입니다. 이미 위로 많이 끌려간 사람보다 방금 잡힌 사람을 먼저 구하는 편이 낫고, 사람이 서너 명 이하로 줄었다면 점수를 포기하고 방어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레이더를 곁눈질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이 게임은 화면이 아니라 레이더로 하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패미컴판이라는 물건
원작은 1981년 오락실에서 큰 인기를 끈 작품이고, 패미컴판은 HAL 연구소가 손을 봤습니다. HAL은 이 시기에 오락실 고전 몇 편을 패미컴으로 옮기는 작업을 맡았는데, 화면 색과 처리 속도의 제약 때문에 원작의 정신없는 밀도를 그대로 재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왕복 이동과 레이더, 사람 구출이라는 구조는 온전히 살아 있어서, 이 계열 게임이 어떤 감각이었는지 알아보기에는 충분합니다.
한국에서는 이 게임이 오락실보다 가정용 쪽에서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 자동으로 스크롤되지 않고 스스로 방향을 정해 날아다니는 슈팅이 당시 기준으로는 낯설었던 탓에, 처음 잡은 사람들이 조작에 적응하지 못하고 금방 손을 놓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대로 감을 잡고 나면 다른 슈팅에서 얻기 힘든 '전장을 관리한다'는 감각이 남는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