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 5
멀티 5 (Multi 5 New Multi Game 5 SET 1) · 1998 · Yun 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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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국내 오락실 한구석에는 기계 한 대에 게임 여러 개가 들어 있는 판이 있었습니다. 동전을 넣으면 먼저 메뉴가 뜨고, 거기서 오늘 할 게임을 고릅니다. 테트리스도 있고 퍼즐 버블 같은 것도 있고 컬럼스 비슷한 것도 있습니다. 하나에 물리면 다른 걸 고르면 되니, 한 대로 여러 사람의 취향을 감당하는 물건이었습니다.
멀티 5(Multi 5 / New Multi Game 5)는 국내 업체 윤성이 1998년에 내놓은 아케이드 모음집입니다. 이름 그대로 게임 다섯 개가 한 기판에 들어 있고, 시작하면 그중 하나를 골라 하는 방식입니다. 네 개는 퍼즐이고 하나는 발판을 오르내리는 액션입니다.
다섯 개에 무엇이 들어 있나
들어 있는 것들은 그 시절 오락실에서 인기 있던 퍼즐의 얼굴을 하나씩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떨어지는 방울을 같은 색끼리 붙여 터뜨리는 것, 세로로 떨어지는 블록의 색을 맞춰 지우는 것, 조각을 논리적으로 배치해 푸는 것, 그리고 줄을 채워 지우는 낙하 블록이 있습니다. 여기에 사다리와 발판을 오르내리는 액션 게임 하나가 끼어 있습니다.
익숙한 규칙들이라는 게 이 판의 성격을 그대로 말해 줍니다. 새로운 걸 배우게 만드는 물건이 아니라, 이미 아는 게임을 골라서 바로 시작하게 해 주는 물건입니다. 손님 입장에서는 설명이 필요 없고, 주인 입장에서는 한 대로 여러 취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각각의 완성도는 원본에 미치지 못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조작 반응이나 연출이 투박하고, 난이도 곡선이 거친 부분도 있습니다. 다만 규칙 자체가 검증된 것들이라 손에 붙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어떤 걸 고르면 되나
처음 붙었다면 낙하 블록류부터 잡는 게 무난합니다. 규칙이 가장 익숙하고 한 판이 오래 가서 동전 값을 뽑기 좋습니다. 다만 뒤로 갈수록 떨어지는 속도가 붙는 구조라, 초반에 바닥을 평평하게 유지해 두지 않으면 속도가 오른 뒤에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방울 터뜨리는 쪽은 각도 잡는 감각이 전부입니다. 벽에 튕겨서 들어가는 경로를 쓸 줄 아느냐가 갈림길입니다. 정면으로만 쏘면 위쪽 구석에 남은 방울을 못 치워서 천장이 계속 내려옵니다. 벽 반사를 몇 번 연습해 두면 체감 난이도가 확 떨어집니다.
색 맞추는 낙하 게임은 한 번에 여러 줄을 지우는 연쇄를 노려야 점수가 납니다. 눈앞의 세 개를 급하게 지우다 보면 쌓아 둔 게 없어서 후반이 버겁습니다. 위험하지 않은 동안은 한 층씩 쌓아 두고 한 번에 무너뜨리는 편이 낫습니다.
끼어 있는 액션 게임은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퍼즐처럼 느긋하게 생각할 시간이 없고, 발판을 오르내리며 위에서 떨어지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퍼즐만 계속하다 머리가 지칠 때 잠깐 갈아타는 용도로 붙어 있는 셈인데, 실제로 이런 모음집에서 액션 하나가 끼어 있는 구성은 꽤 흔했습니다.
두 사람이 붙을 수도 있습니다. 퍼즐류는 나란히 앉아 서로의 화면을 흘끗거리며 누가 더 오래 버티나 재는 재미가 있어서, 혼자 할 때보다 판이 훨씬 시끄러워집니다.
윤성과 그 시절 국내 기판
윤성은 1990년대 국내에서 아케이드 기판을 만들던 업체 중 하나입니다. 그 시절 국내 업체들은 대체로 이미 검증된 일본 게임의 규칙을 가져와 자기 그림으로 다시 만들거나, 여러 게임을 한 기판에 묶어 파는 방식으로 시장을 파고들었습니다. 이 모음집 역시 그 전형에 속합니다.
이런 판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락실 주인들의 사정이 있습니다. 새 기판은 비싸고, 유행은 빨리 지나가고, 한 게임에 손님이 물리면 그 자리가 죽습니다. 여러 게임이 든 판 하나면 그 위험을 나눌 수 있으니 수요가 분명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90년대 후반 국내 오락실에는 비슷한 성격의 모음집 기판이 여러 종류 돌아다녔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이 판은 화려한 게임들이 놓인 중앙이 아니라 대체로 구석 자리, 혹은 동네 문방구 앞 기계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격투 게임이나 슈팅에 자신 없는 사람, 잠깐 짧게 한 판 하고 갈 사람이 주로 앉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판은 특정 게임의 추억이라기보다 그 자리의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무슨 게임이 들어 있었는지는 가물가물해도 메뉴 화면에서 고르던 감각은 기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 설치 없이 브라우저에서 바로 실행해 보면, 그 시절 오락실 구석의 공기가 어떤 것이었는지 짧게나마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