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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챔프 디럭스

멀티 챔프 디럭스 (Multi Champ Deluxe Ver 0106 06012000) · 2000 · E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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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에 여섯 개가 들어 있습니다

오락실 기계는 보통 한 대에 게임 하나입니다. 자리를 차지하는 값이 있으니 그 자리에서 손님을 얼마나 붙잡느냐가 곧 매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계는 동전을 넣으면 무엇을 할지 고르는 화면부터 나옵니다. 블록을 쌓아 줄을 지우는 것, 색을 맞춰 떨어뜨리는 것, 공을 쏘아 풍선을 터뜨리는 것, 같은 패를 찾아 지우는 것, 미로를 돌며 점을 먹는 것, 카드를 정리하는 것이 한 화면에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그날 기분에 따라 다른 게임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이 이 기계의 전부이자 존재 이유입니다.

이런 물건이 나온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락실 주인 입장에서 게임 하나가 손님을 못 끌면 그 자리는 그대로 손해입니다. 여러 개를 넣어 두면 적어도 그중 하나는 걸리기 때문에, 자리 하나의 회전율을 올리는 실용적인 해법이었습니다.

멀티 챔프 디럭스 기타 게임 화면 1 - 오락실 (2000)

어떤 게임인가

멀티 챔프 디럭스(Multi Champ Deluxe)는 여러 종류의 퍼즐과 고전 아케이드 게임을 한 기판에 모아 놓고 고르게 하는 모음 게임입니다. 담긴 게임들은 하나같이 1980년대와 1990년대 오락실에서 널리 퍼졌던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위에서 떨어지는 블록을 빈틈없이 채워 줄을 지우는 것, 같은 색을 세 개 이상 세로나 가로로 맞추는 것, 위에서 내려오는 공을 총으로 쏘아 갈라 없애는 것, 그림이 같은 패 두 장을 찾아 짝을 맞춰 지우는 것, 미로를 돌며 점을 먹고 쫓아오는 것을 피하는 것 같은 식입니다.

조작은 어느 것을 골라도 레버와 버튼 두 개 안에서 끝납니다. 그래서 설명을 읽을 필요가 없고, 화면을 몇 초 보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처음 오는 사람도, 오래 해 온 사람도 같은 기계 앞에서 각자 편한 것을 골라 앉을 수 있다는 점이 이런 모음 게임의 강점이었습니다.

멀티 챔프 디럭스 기타 게임 화면 2 - 오락실 (2000)

어떤 걸 골라야 할까

여섯 가지 중에서 성격이 확실히 갈립니다. 블록을 쌓는 쪽과 색을 맞추는 쪽은 실력이 붙을수록 오래 버티는 게임이라, 한 판을 길게 가져가고 싶은 사람에게 맞습니다. 다만 판이 올라갈수록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져서 어느 지점부터는 손이 못 따라가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를 대비해 미리 바닥을 평평하게 유지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급해진 다음에 정리하려 들면 이미 늦습니다.

공을 쏘아 터뜨리는 쪽은 순발력이 필요한 대신 한 판이 짧고 결과가 시원합니다. 큰 것을 잘못 터뜨리면 작은 것 여러 개로 갈라져 화면이 갑자기 복잡해지니, 어느 것을 먼저 터뜨릴지 순서를 정해 두는 것이 요령입니다. 구석에 몰린 채로 큰 것을 터뜨리면 갈라진 조각에 갇히기 쉽습니다.

같은 패를 찾아 지우는 쪽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차분히 볼 수 있어서,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훈수를 두기에도 좋습니다. 미로를 도는 쪽은 규칙이 가장 단순해 처음 잡는 사람에게 알맞습니다. 어느 쪽이든 한 판이 길지 않아, 동전 하나로 여러 종류를 조금씩 맛보는 방식으로 즐기게 됩니다.

만든 곳과 그 시절 사정

이 기판을 만든 곳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국내에서 아케이드 기판을 내놓던 회사입니다. 이 시기 한국의 작은 개발사들에게 모음 게임은 현실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대형 회사의 신작과 정면으로 겨루기에는 규모가 모자랐지만, 이미 검증된 형식의 게임 여러 개를 한 기판에 담아 오락실에 싼값으로 넣어 주는 일은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무렵 오락실 사정도 이런 물건을 필요로 했습니다. 대전 격투와 리듬 게임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큰 기계 한 대 값이 만만치 않던 때였습니다. 자리는 있는데 비싼 기계를 더 들이기 어려운 오락실에게, 여러 게임이 들어 있어 남녀노소 아무나 앉힐 수 있는 기판은 쓸모가 분명했습니다. 실제로 이런 모음 기판은 오락실 입구 근처나 분식집 한쪽, 목욕탕 앞 같은 곳에 자주 놓였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이런 기계 앞에는 오락실 단골이 아닌 사람들이 앉았습니다. 격투 게임 앞에 서기는 부담스럽고, 슈팅은 몇 초 만에 죽어 버리는데, 여기서는 블록을 쌓거나 짝을 맞추면서 동전 하나로 몇 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나 여성 손님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계이기도 했습니다.

기록을 두고 다투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화면에 남는 점수 순위표에 이름을 남기려고 같은 게임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순위표가 그 오락실만의 이야깃거리가 되곤 했습니다. 화려한 대작은 아니지만 오락실이라는 공간을 실제로 지탱하던 물건이 이런 기계였습니다. 브라우저에서 바로 켤 수 있게 된 지금, 무엇을 할지 고르는 그 첫 화면부터 다시 마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