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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이야기 슈퍼패미컴

목장이야기 (Harvest Moon Europe) · 1996 · Pack-In-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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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는 게임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슈퍼패미컴에 꽂고 전원을 켜면 화면에 나오는 건 무기도 마왕도 아니고 잡초가 무성한 밭 한 뙈기입니다. 할아버지가 남긴 목장을 물려받았는데, 처음 며칠은 낫을 들고 풀을 베고 도끼로 그루터기를 쪼개는 게 일과의 전부입니다. 여기서 지루하다고 끄는 사람도 있고, 어느새 밤 열두 시까지 무를 심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후자가 되면 한참을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적을 쓰러뜨려서 얻는 성취가 아니라 어제보다 밭이 조금 넓어지고 헛간에 닭이 한 마리 늘어난 걸로 만족하는 게임이라, 당시에는 꽤 낯선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낯선 감각이 정확히 이 게임의 무기였습니다.

목장이야기 슈퍼패미컴 RPG 게임 화면 1 - 슈퍼 패미컴 (1996)

어떤 게임인가

목장이야기(Harvest Moon)는 주인공이 시골 마을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2년 남짓을 살아가는 생활 시뮬레이션입니다. 하루는 아침에 시작해 밤에 끝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정해진 날수만큼 돌아갑니다.

할 일은 단순합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자란 걸 수확해 출하 상자에 넣습니다. 그 돈으로 밭을 넓히거나 소를 사거나 도구를 강화합니다. 대신 시간이 유한하다는 압박이 있어서, 오늘 물을 안 주면 작물이 시들고 며칠 소를 안 돌보면 우유가 나오지 않습니다.

목장이야기 슈퍼패미컴 RPG 게임 화면 2 - 슈퍼 패미컴 (1996)

계절이 곧 규칙입니다

작물마다 심을 수 있는 계절이 정해져 있어서 봄에 심을 걸 여름에 심을 수 없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남아 있던 작물은 그대로 말라 죽기 때문에, 계절 끝자락에는 수확 날짜를 세어 가며 심어야 합니다. 이 계산이 은근히 머리를 쓰게 만듭니다.

겨울은 밭을 쓸 수 없는 계절이라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농사를 못 짓는 대신 산에 올라가 채집을 하거나, 축사에 붙어서 가축을 챙기거나, 마을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게 됩니다. 이 강제된 휴식기가 게임의 리듬을 잡아 줍니다.

마을 사람과 결혼

농사만 짓다 보면 놓치기 쉬운데, 마을에는 결혼할 수 있는 처녀들이 살고 있습니다. 꽃을 선물하고 좋아하는 물건을 챙겨 주고 자주 얼굴을 비추면 호감도가 올라갑니다. 정해진 기간 안에 결혼하지 못하면 그대로 혼자 남게 되니, 농사와 연애의 시간 배분이 또 하나의 과제입니다.

결혼 후에는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자라는 걸 지켜보는 것까지가 게임에 들어 있습니다. 밭 하나로 시작한 이야기가 가정을 이루는 데까지 이어지는 구성이라, 마지막에 지난 2년을 돌아보는 평가 화면이 나올 때 감상이 남습니다.

이후 시리즈의 원형

이 한 편에서 정립된 구조 — 계절 순환, 출하 상자, 호감도와 결혼, 체력을 소모하는 도구 — 는 이후 수많은 후속작에서 거의 그대로 이어집니다. 플랫폼을 바꿔 가며 시리즈가 길게 이어졌지만 뼈대는 여기서 만들어졌습니다.

요즘 나오는 농장 게임들도 결국 이 문법을 물려받은 셈이라, 지금 해 보면 익숙하면서도 원본 특유의 단출함이 느껴집니다. 도구 하나 강화하는 데 며칠이 걸리는 그 답답함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