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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허슬러 오락실판

비디오 허슬러 (Video Hustler) · 1981 · Kon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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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미 하면 그라디우스와 콘트라, 악마성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그 이전에 이 회사는 여러 장르를 두루 건드리던 작은 개발사였습니다. 비디오 허슬러는 그 시절의 흔적입니다. 그리고 이 게임에는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하나 붙어 있습니다. 흰 공이 벽에 튕기며 화면을 가로지르는 궤적을 지켜보던 프로그래머가, 화면 한가운데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총알을 떠올렸다는 겁니다. 그렇게 나온 게 타임 파일럿입니다.

비디오 허슬러(Video Hustler)는 화면 위 판에 놓인 공을 쳐서 구멍에 넣는 당구 게임입니다. 흰 공을 밀어 번호가 붙은 공 여섯 개를 차례로 포켓에 떨어뜨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제목의 허슬러는 당구장에서 돈을 걸고 치던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비디오 허슬러 오락실판 스포츠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1)

당구라기보다 알까기에 가까운 판

이 게임의 판은 우리가 아는 초록 천이 깔린 당구대와 조금 다릅니다. 번호가 매겨진 색색의 말이 판 위에 놓여 있는 모양새라, 당구보다는 인도식 보드게임인 캐롬에 가깝게 보입니다. 물리 계산도 정밀한 시뮬레이션이라기보다 당구의 감을 흉내 낸 쪽입니다.

그래도 각 계산은 대체로 통합니다. 목표 공의 어디를 맞히느냐에 따라 갈라져 나가는 각도가 달라지고, 벽에 튕기는 반사각도 예상대로 나옵니다. 당구를 조금이라도 쳐 본 사람이라면 감으로 치는 것과 각을 재고 치는 것의 결과가 확실히 다르다는 걸 금방 느낍니다.

한 번 치는 데 필요한 판단은 두 가지입니다. 방향과 세기입니다. 세게 치면 멀리 가지만 흰 공을 원하는 자리에 세우기 어렵고, 약하게 치면 정확하지만 공이 포켓까지 굴러가지 못합니다. 다음 한 방을 생각하고 지금 한 방의 세기를 정하는 게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비디오 허슬러 오락실판 스포츠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1)

어디에 넣느냐가 점수를 가른다

이 게임의 진짜 재미는 배점에 있습니다. 그냥 공을 넣는다고 다 같은 점수가 아닙니다. 공에 붙은 번호에 따라 값이 다르고, 여기에 어느 포켓에 넣었느냐에 따라 배수가 또 붙습니다.

그래서 실력자와 초보의 점수 차이가 크게 벌어집니다. 초보는 넣기 쉬운 공을 가까운 포켓에 밀어 넣지만, 익숙한 사람은 번호가 큰 공을 배수가 높은 포켓 쪽으로 몰아 놓는 준비 샷을 먼저 칩니다. 한 방에 넣는 것보다 다음 판을 만드는 게 이득인 상황이 자주 나온다는 뜻입니다.

오락실 게임인 만큼 여유는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그 안에 정해진 수를 넣어야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현실의 당구는 오래 고민할수록 유리하지만 여기서는 고민이 곧 손해입니다. 그래서 실제 공략은 조금 거칠어집니다. 완벽한 각을 기다리기보다 될 것 같으면 일단 치는 편이 점수가 잘 나옵니다.

가장 흔한 실수는 흰 공을 포켓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목표 공을 넣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흰 공이 그대로 따라 들어갑니다. 목표 공과 포켓, 그리고 흰 공이 그 뒤에 어디로 갈지까지 한 번에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초창기 오락실의 스포츠 게임

80년대 초 오락실에는 슈팅과 미로 게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당구나 볼링 같은 스포츠를 소재로 한 게임은 눈에 띄는 존재였습니다. 총알을 피하지 않아도 되고, 앉아서 천천히 생각하는 종류의 재미였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으로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공이 여러 개 굴러다니며 서로 부딪히고 벽에 튕기는 걸 그 시절 하드웨어로 계산하는 건 부담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초창기 당구 게임은 공의 수를 줄이고 물리 계산을 단순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게임이 공을 여섯 개로 제한한 것도 같은 이유로 보입니다.

이 게임은 코나미가 만들고 레이잭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나왔습니다. 북미에서는 리틀 허슬러라는 다른 제목으로 배급되기도 했습니다. 초창기 코나미가 아직 자기 이름으로 세계 시장에 나서기 전이었다는 뜻입니다.

오락실보다 당구장이 가까웠던 나라

한국에서 이 게임이 크게 유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애초에 당구는 오락실 화면으로 할 게 아니라 당구장에 가서 치는 것이었고, 80년대 한국에는 당구장이 골목마다 있었습니다. 화면 속 당구는 실제 큐를 잡는 감각을 대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런 게임이 남긴 게 있습니다. 훗날 오락실과 콘솔에 쏟아진 당구 게임들, 지금도 스마트폰에서 흔한 포켓볼 게임들이 쓰는 조준선과 힘 조절 방식이 이 시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방향을 정하고 세기를 정한 뒤 친다는 두 단계 조작은 사실상 이때 확립된 문법입니다.

지금 해 보면 그림은 단출합니다. 대신 각도를 재고 성공했을 때의 기분은 사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