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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MSX판

삼국지 (Sangokusi 1) · 1985 · Ko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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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한 턴입니다

이 게임을 처음 켜면 전투 장면이 아니라 지도와 숫자가 먼저 나옵니다. 자기가 가진 성의 인구와 금, 병량, 그리고 거느린 무장들의 능력치가 전부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할지 정하는 게 한 턴이고, 그 턴이 쌓여 계절이 가고 해가 갑니다. 칼을 뽑기 전에 논밭을 갈고 세금을 걷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 게임에서 처음 배운 사람이 많습니다.

삼국지(三國志)는 삼국시대 중국을 무대로 군주 한 명을 골라 대륙을 통일하는 역사 시뮬레이션입니다. 유비나 조조, 손권처럼 잘 알려진 인물부터 시작할 수도 있고, 성 하나만 가진 작은 세력으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을 고르느냐에 따라 게임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삼국지 MSX판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화면 1 - MSX (1985)

내정이 절반입니다

전쟁을 하려면 병사가 있어야 하고, 병사를 먹이려면 병량이 있어야 하고, 병량을 얻으려면 개간을 해야 합니다. 이 사슬이 게임 내내 이어집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싸움을 미루고 개간과 치수, 상업 개발에 턴을 붓게 됩니다. 급하게 군사를 일으켰다가 병량이 떨어져 스스로 무너지는 일이 흔합니다.

무장 각각의 능력치도 어디에 쓸지를 갈라 놓습니다. 무력이 높은 무장은 전장에 세우고, 지력이 높은 무장은 계략과 내정에 씁니다. 정치 수치가 높은 무장에게 개발을 맡기면 같은 턴에 더 큰 성과가 나옵니다. 사람을 어디에 배치하느냐가 그대로 국력 차이로 이어집니다.

사람을 모으는 일

이 시리즈가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결국 인물입니다. 재야에 묻혀 있는 인재를 찾아 등용하고, 다른 세력에 붙잡힌 장수를 설득해 데려오고, 충성이 떨어진 무장을 상으로 달래는 과정 자체가 게임의 큰 부분입니다. 사람이 없으면 성이 많아도 아무것도 못 합니다.

충성도 관리를 소홀히 하면 애써 키운 무장이 다른 세력으로 떠나기도 합니다. 반대로 상대 세력의 불만 있는 무장을 노려 빼 오는 것도 중요한 수단입니다. 전쟁으로 성 하나를 얻는 것보다 좋은 무장 한 명을 얻는 편이 나을 때가 자주 있습니다.

전쟁은 마지막 수단

전투는 지형과 병력, 병량이 함께 걸린 소모전에 가깝습니다. 병력만 많다고 이기지 않고, 보급이 끊기면 강한 군대도 물러나야 합니다. 화계나 계략처럼 지력이 높은 무장이 쓸 수 있는 수단도 있어서, 정면으로 붙기 전에 상대를 흔들어 두는 편이 유리합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전쟁은 대개 미리 준비된 결과입니다. 몇 년에 걸쳐 내정을 쌓고 인재를 모아 두었다면 전투는 확인 작업이 되고, 준비 없이 뛰어들면 한 번의 패배로 몇 해가 날아갑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턴제라 시간을 재촉하지 않습니다. 화면을 보며 천천히 생각하다가 명령을 내리면 되고, 중간에 멈춰도 흐름이 끊기지 않습니다.

한 번 시작하면 통일까지 가는 길이 길지만, 초반 몇 년만 굴려 봐도 이 게임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금방 알게 됩니다. 숫자만 있는 화면인데도 사람 이름 하나하나에 서사가 붙어서, 다음 턴을 계속 누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