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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더볼트

선더볼트 (Thunder Bolt) · 1986 · Pi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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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픽셀이라는 작은 회사가 네오 레전드라는 연작을 기획했는데, 초능력을 지닌 소년 네오가 시간을 넘나들며 인류를 위협하는 다섯 가지 파멸의 요인을 하나씩 없앤다는 구상이었습니다. 1985년 제타 2000으로 시작해 이듬해 선더볼트로 이어졌지만, 세 번째는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선더볼트(Thunderbolt)는 그 연작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부제가 네오 레전드 2입니다. 화면을 돌아다니며 적과 싸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구성인데, 액션과 롤플레잉의 중간쯤에 있는 물건이라 자료마다 분류가 엇갈립니다. 어느 쪽이든 손으로 조작해 적을 상대하며 진행한다는 점은 같습니다.

선더볼트 RPG 게임 화면 1 - MSX (1986)

제타 2000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앞선 제타 2000은 1985년 12월에 카세트테이프로만 나온 실시간 롤플레잉 게임이었습니다. 소년 네오가 미로처럼 얽힌 지하 도시를 탐험하며 제타 2000이라는 이름의 슈퍼컴퓨터를 파괴하는 내용입니다. 인류를 위협하는 다섯 요인 중 첫 번째를 처리하는 셈입니다.

선더볼트는 그 뒤를 잇습니다. 시간을 건너 다음 위협과 마주하는 구조인데, 전작이 테이프였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32킬로바이트 롬 카트리지로 나왔습니다. 테이프에서 카트리지로 옮겨 갔다는 건 그만큼 담을 것이 늘었고 회사도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당시 이 게임을 두고 콤파일의 골베리우스와 비슷한 계열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골베리우스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면에서 돌아다니며 싸우고 성장하는 액션 롤플레잉의 대표작인데, 그게 선더볼트보다 일 년 뒤에 나왔습니다. 이 게임이 앞서 비슷한 방향을 시도했다는 평가인 셈입니다.

선더볼트 RPG 게임 화면 2 - MSX (1986)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기본은 돌아다니며 싸우는 것입니다. 화면에 나타나는 적을 처리하면서 길을 찾아 나아가고, 막힌 곳을 열 방법을 찾습니다. 이런 계열 게임이 대개 그렇듯, 지금 갈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건 어딘가에 그걸 여는 수단이 있다는 뜻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벽은 안내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 시절 일본 컴퓨터 게임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화면에서 알려 주지 않습니다. 설명서가 게임의 절반이었고, 그게 없으면 스스로 알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첫 몇 판은 지형과 규칙을 파악하는 데 쓴다고 생각하는 편이 마음이 편합니다.

요령이라면 무리하게 앞으로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게임은 대개 지금 있는 구역에서 충분히 준비한 다음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적이 강해졌다면 아직 갈 때가 아니라는 신호로 읽으면 대체로 맞습니다. 지형을 종이에 그려 두는 것도 여전히 유효한 방법입니다.

픽셀이라는 회사

픽셀은 MSX 시절에 짧게 활동한 소규모 개발사입니다. 큰 회사가 아니었고 낸 작품 수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 회사가 세 편짜리 연작을 기획했다는 것 자체가 야심이었습니다.

이 게임은 카트리지로도 팔렸지만 타케루라는 소프트 자동판매기를 통해 조금 싸게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타케루는 가게에 놓인 기계에 돈을 넣으면 그 자리에서 디스크에 게임을 구워 주고 설명서까지 인쇄해 주던 물건입니다. 지금의 다운로드 판매를 80년대에 기계로 구현한 셈인데, 작은 회사가 유통망 없이 소프트를 팔 수 있는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픽셀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네오 레전드 3부작은 두 편에서 멈췄고, 소년 네오가 남은 위협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MSX 시절에는 이런 식으로 중간에 끊긴 연작이 적지 않습니다.

그 시절 MSX 소프트 시장

80년대 중반 일본 MSX 시장에는 크고 작은 회사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코나미와 허드슨 같은 큰 이름이 화려한 물건을 내는 한편, 이름 없는 작은 회사들이 각자의 아이디어로 소프트를 냈습니다. 판매량은 적었지만 그중 일부는 나중에 표준이 되는 발상을 먼저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MSX는 대우와 금성이 국산 기종을 내면서 퍼졌습니다. 학습용이라는 이름으로 팔렸지만 실제로는 게임기로 쓰였고, 문방구와 전자상가에서 복사한 소프트가 돌았습니다. 다만 이런 무명 회사의 소프트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돌아다니던 건 코나미 게임처럼 이름값 있는 물건 위주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더볼트 같은 게임은 지금 다시 보는 것이 사실상 처음인 사람이 대부분일 겁니다. 완성되지 못한 연작의 중간 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화면 하나하나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