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텐
슈퍼 텐 (Super Ten v8 3) · 1988 · U.S. G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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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구석에 있던 기계
1980년대 후반 오락실에는 액션이나 슈팅이 아닌 기계가 한두 대씩 섞여 있었습니다. 화면에 카드가 다섯 장 떠 있고, 버튼 몇 개와 숫자만 보이는 기계입니다. 아이들은 무슨 게임인지 몰라 지나쳤고, 어른들이 앉아 조용히 버튼만 누르다 가곤 했습니다.
슈퍼 텐(Super Ten)은 그 계열의 기판입니다. 화려한 연출도 없고 스테이지도 없습니다. 카드가 나오고, 남길 것을 고르고, 다시 뽑고, 결과에 따라 숫자가 오르내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단순함 때문에 이런 기계 앞에서 사람들이 가장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기본 흐름은 카드 게임의 족보 맞추기입니다. 판이 시작되면 카드가 여러 장 펼쳐지고, 그중 남기고 싶은 것을 골라 고정합니다. 고정하지 않은 자리는 새 카드로 바뀝니다. 바뀐 결과가 미리 정해진 조합에 들어맞으면 그 조합에 붙은 배수만큼 점수를 받고,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면 걸었던 만큼 잃습니다.
한 판이 몇 초면 끝난다는 것이 이런 게임의 특징입니다. 생각할 시간이 거의 없고, 결과가 바로 나오고, 다음 판이 곧장 이어집니다. 화면 한쪽에 어떤 조합이 몇 배인지 늘 표시되어 있어서 규칙을 따로 배울 필요도 없습니다.
판단이 갈리는 지점
이런 게임에서 실력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리느냐입니다. 눈앞에 작은 조합이 이미 완성되어 있을 때 그것을 지키고 넘어갈지, 아니면 한 장을 깨고 더 큰 조합을 노릴지가 매번 나옵니다. 확률만 놓고 보면 답이 정해져 있는 상황이 대부분이지만, 실제로 앉아 있으면 큰 쪽에 손이 갑니다.
두 번째는 이어 걸기입니다. 이긴 뒤에 결과를 그대로 걸고 한 번 더 뒤집는 선택지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성공하면 갑절이 되고 실패하면 전부 사라집니다. 여기서 멈추지 못하는 것이 이 종류의 기계 앞에서 사람이 가장 크게 무너지는 지점입니다. 한두 번 성공하면 그만두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여러 종목을 한 기계에
이 시기 이런 기판은 한 종목만 담지 않았습니다. 카드 게임을 중심에 두고, 숫자를 맞히거나 그림을 맞추는 다른 종목을 함께 넣어 놓고 손님이 골라서 하게 하는 구성이 흔했습니다. 한 대로 여러 취향을 감당할 수 있으니 자리를 아끼려는 업소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기계 뒤에는 설정을 바꾸는 스위치가 있어서 배당이나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었고, 같은 기판이라도 어느 가게에 놓였느냐에 따라 체감이 달랐습니다. 제목 뒤에 붙은 판 번호가 자주 바뀌는 것도 이런 기계의 특징입니다. 규칙을 조금씩 손봐 새 판을 계속 내보냈기 때문입니다.
만든 곳과 그 시절 사정
이 기판을 낸 유에스 게임스는 미국에서 이런 종류의 기계를 전문으로 만들던 회사입니다. 오락실용 액션 게임과는 시장 자체가 달라서, 술집이나 휴게 공간처럼 어른들이 잠깐 앉는 자리에 놓이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었습니다. 화면이 단순하고 글자가 큰 것도 그 때문입니다.
1980년대 후반은 이런 기계가 가장 많이 만들어지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값비싼 그래픽 하드웨어가 필요 없으니 제작 비용이 적게 들었고, 회전율이 높아 업소 입장에서도 수익이 좋았습니다. 게임 산업의 화려한 부분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런 기판이 오락실 한 칸을 오래 지켰던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한국에서도 비슷한 기계들이 오락실 구석이나 별도의 공간에 놓여 있었습니다. 카드 그림이 나오는 기계라 아이들이 앉는 자리와는 자연스럽게 구분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사행성 문제로 규제가 강해져 일반 오락실에서 점점 자취를 감췄습니다.
지금 이 화면을 다시 켜 보면 게임 자체보다 그 시절의 공기가 먼저 떠오릅니다. 화면 가득한 카드와 큰 숫자, 그리고 아무 소리 없이 다음 판이 시작되는 그 리듬은 요즘 게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형태입니다. 배경 설명 없이도 바로 한 판을 돌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 오락실의 다른 한쪽을 짐작해 보기에는 좋은 자료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