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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톰 블레이드

스톰 블레이드 (Storm Blade Us) · 1996 · V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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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 선택 화면에 F-14 톰캣과 미그-29, 해리어가 나란히 서 있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합니다. 그런데 그 옆에 제로센이 한 대 끼어 있습니다. 조종사는 노인이고, 기체 설명에는 카미카제 스페셜이라고 붙어 있습니다. 1996년에 나온 슈팅 게임이 실존 전투기들 사이에 2차 대전 프로펠러기를 아무렇지 않게 세워 놓은 이 배짱이, 스톰 블레이드를 기억하게 만드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스톰 블레이드(Storm Blade)는 전투기를 몰고 육지와 바다 위를 날며 적기와 헬기, 전차와 함선을 부수는 종스크롤 슈팅 게임입니다. 조작은 사격과 폭탄 두 버튼이며, 적을 부수면 나오는 파워업을 먹어 화력을 키우고 위급할 때 폭탄으로 화면을 정리합니다. 슈팅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설명 없이 앉아도 첫 판은 넘길 수 있는 구조입니다.

스톰 블레이드 슈팅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6)

네 기체, 네 가지 플레이

이 게임의 가장 큰 재미는 기체 선택입니다. 네 기체가 그림만 다른 것이 아니라 무장 성격이 갈립니다. 탄이 넓게 퍼지는 기체는 잡졸을 지우는 데 편하지만 보스를 깎는 속도가 느리고, 앞으로 모이는 기체는 그 반대입니다. 속도 차이도 있어서, 빠른 기체는 탄 사이를 빠져나가기 좋지만 정밀하게 자리를 잡기가 어렵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탄이 퍼지는 쪽을 권합니다. 슈팅에서 가장 많이 죽는 이유는 보스가 안 죽어서가 아니라 잡졸을 못 지워서이기 때문입니다. 화면이 적으로 차기 전에 미리 지울 수 있으면 그만큼 피할 공간이 생기고, 결과적으로 오래 살아 화력도 유지됩니다.

반대로 몇 판 해 보고 지형과 적 배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화력이 앞에 몰리는 기체가 훨씬 시원합니다. 보스 구간에서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고, 시간이 줄면 보스가 뿌리는 탄 자체를 덜 보게 됩니다. 슈팅에서 화력은 곧 안전이라는 말이 이 게임에서도 그대로 통합니다.

스톰 블레이드 슈팅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96)

파워업과 폭탄 운용

파워업은 일반형과 상위형 두 가지가 나옵니다. 상위형을 먹으면 화력이 눈에 띄게 올라가므로, 이것이 떨어졌을 때는 다소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회수하는 편이 낫습니다. 문제는 대개 화면 가장자리로 흘러간다는 점인데, 아이템을 쫓다가 벽 쪽으로 몰려 죽는 것이 이 게임에서 가장 흔한 실수입니다.

폭탄은 개수가 제한되어 있고 적이 가끔 떨어뜨립니다. 아껴 두다 못 쓰고 죽는 것이 제일 손해입니다. 특히 보스가 마지막 패턴으로 넘어가면서 탄이 갑자기 두꺼워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 폭탄을 쓰면 대부분 안전하게 넘어갑니다. 잔기 하나를 잃으면 화력까지 잃어 다음 구간이 훨씬 어려워지므로, 폭탄 아끼기는 거의 언제나 손해입니다.

난이도가 튀는 지점

초반은 적기가 정직한 편대로 들어오고 지상 목표도 사격 간격이 넉넉합니다. 그러다 바다 위 구간이나 대형 함선이 등장하는 구간에 들어서면, 화면 여기저기에 박힌 포대가 동시에 쏘기 시작하면서 체감이 확 달라집니다. 이때부터는 앞으로 밀고 나가는 플레이보다 화면 아래쪽에서 각을 잡고 하나씩 지우는 플레이가 안전합니다.

또 하나 조심할 것은 지상 목표에 시선을 뺏기는 일입니다. 전차나 포대를 부수는 재미에 화면 아래를 보고 있으면, 위에서 내려온 적기가 뒤통수를 칩니다. 시선은 언제나 자기 기체 주변에 두고, 지상 목표는 주변 시야로 처리하는 것이 요령입니다.

1996년의 슈팅 시장에서

1996년이면 슈팅 장르가 이미 정점을 지나 마니아 취향으로 좁아지던 무렵입니다. 대전 격투가 오락실의 중심을 차지했고, 슈팅은 좋아하는 사람만 하는 장르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나온 스톰 블레이드는 화면 가득 탄을 뿌리는 극단적인 방향 대신, 실존 군용기 소재와 시원한 폭발 연출로 승부를 본 편입니다.

한국 오락실 기준으로 보면 이 게임은 크게 히트한 축은 아닙니다. 같은 시기 오락실을 채운 것은 대전 격투와 벨트스크롤 액션이었고, 슈팅 기판은 구석에서 조용히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만 기체 선택 화면에서 제로센을 발견하고 한 번쯤 골라 본 사람들은 그 장면을 오래 기억합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슈팅이 화려하게 저물어 가던 그 시기의 분위기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