슷테 핫쿤
슷테 핫쿤 (Sutte Hakkun English) · 1998 · Ninte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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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 방송으로 배달된 게임
이 게임이 처음 세상에 나온 방식부터 특이합니다. 카트리지를 사서 꽂은 것이 아니라, 위성 방송을 통해 슈퍼패미컴으로 내려받는 서비스로 배포됐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방송을 받아 두면 그날의 퍼즐을 풀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 다운로드가 일상이 되기 한참 전에, 일본에서는 게임이 방송을 타고 집으로 들어오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슷테 핫쿤(Sutte Hakkun)은 그 서비스에서 인기를 얻어 나중에 실물 카트리지로도 나온 슈퍼패미컴용 퍼즐 액션 게임입니다. 조용한 그림체와 잔잔한 음악 뒤에 상당히 머리를 쓰게 만드는 구조가 숨어 있습니다.
색을 빨아들이고 뱉는다
주인공 핫쿤은 새처럼 생긴 작은 캐릭터이고,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입니다. 색을 빨아들이고 다른 곳에 뱉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색이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물리 법칙입니다.
빨간색을 블록에 넣으면 그 블록이 위로 밀려 올라갑니다. 파란색을 넣으면 아래로 내려갑니다. 노란색을 넣으면 옆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니까 색을 옮기는 행위가 곧 지형을 움직이는 행위입니다. 플레이어는 이 규칙을 이용해 발판을 만들고 길을 열어 목표 지점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각 스테이지에는 색이 미리 배치돼 있고, 쓸 수 있는 색의 수는 제한돼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 데나 넣어 보다가는 색이 엉뚱한 곳에 박혀 되돌릴 수 없게 됩니다. 어디에 무엇을 넣을지 순서까지 계산해야 하는 것이 이 게임의 핵심입니다.
왜 어려운가
겉모습만 보면 어린이용 게임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초반 스테이지는 아주 부드럽게 규칙을 가르쳐 줍니다. 색 하나를 블록에 넣어 발판을 만들어 올라가는 정도입니다.
문제는 중반부터입니다. 블록이 여러 개 얽히고, 움직인 블록이 다른 블록을 밀고, 핫쿤 자신이 그 블록에 올라탄 채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나옵니다. 한 수를 두면 판 전체가 바뀌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서너 수를 미리 굴려 보지 않으면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손이 빠른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고, 오로지 생각으로 뚫는 게임입니다.
여기서 막혔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목표에서 거꾸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도착 지점에 서려면 마지막에 어떤 블록이 어디 있어야 하는지, 그 블록이 거기 가려면 어떤 색이 어디 들어가야 하는지를 역순으로 짚어 나가면 대개 길이 보입니다. 앞에서부터 시행착오로 밀어붙이면 색만 낭비하고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되돌리기가 있는 퍼즐
이 게임이 친절한 부분은 실수를 쉽게 되돌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넣은 색을 다시 빨아들일 수 있고, 판이 꼬였으면 스테이지를 바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시간 제한에 쫓기지 않기 때문에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며 궁리할 수 있습니다.
퍼즐 게임에서 이 설계는 중요합니다. 실수가 큰 비용이 되면 사람은 시도를 줄이고, 시도가 줄면 규칙을 깨우칠 기회도 줄어듭니다. 슷테 핫쿤은 실패를 값싸게 만들어 놓고 대신 문제 자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쪽을 택했습니다.
닌텐도 퍼즐 게임의 계보에서
닌텐도는 오래전부터 규칙 하나를 깊이 파는 퍼즐 게임을 꾸준히 내 왔습니다. 복잡한 조작이나 화려한 연출 없이, 단순한 규칙에서 나오는 경우의 수만으로 수십 개의 문제를 만들어 내는 방식입니다. 이 게임도 그 계보에 정확히 놓입니다. 배울 규칙은 색 세 가지가 전부인데, 그것만으로 스테이지가 계속 새로워집니다.
위성 방송 서비스 시절에는 매주 새 문제가 배달됐고, 나중에 나온 실물판에는 문제 수가 크게 늘어 실렸습니다. 애초에 한 회분씩 짧게 즐기도록 설계된 게임이라, 지금 해도 한 스테이지씩 끊어서 붙잡기에 좋습니다.
지금 해 볼 만한가
이 게임은 슈퍼패미컴 후기작이면서도 그래픽으로 승부하지 않습니다. 화면은 담백하고, 캐릭터는 작고 둥글고, 배경은 조용합니다. 그래서 오래된 게임 특유의 촌스러움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규칙과 문제만으로 서 있는 게임은 시간이 지나도 잘 낡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는 일본 위성 방송 서비스 자체가 없었으니 당시에 접한 사람이 거의 없는 게임입니다. 그만큼 지금 처음 만나는 사람이 많고, 처음 만나기에 나쁘지 않은 게임이기도 합니다. 설치할 것 없이 브라우저에서 바로 켜서 초반 몇 스테이지만 해 보면 이 규칙의 맛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