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 인 갤럭틱 스톰
어벤저스 인 갤럭틱 스톰 (Avengers in Galactic Storm Us Europe 1 0) · 1995 · Data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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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 게임에서 동료를 불러 한 대 때리고 사라지게 하는 이른바 어시스트, 스트라이커 시스템은 흔히 네오지오의 킹 오브 파이터즈 99가 처음 들여온 것으로 이야기되곤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몇 해 앞서, 데이터 이스트가 마블 코믹스 판권을 들고 만든 이 게임이 이미 같은 구조를 굴리고 있었습니다. 한 명을 조종하면서 다른 한 명을 순간적으로 호출해 공격을 얹는 방식이 여기서 이미 완성형에 가깝게 돌아갔는데, 정작 이 게임 자체는 거의 잊혔습니다.
어벤저스 인 갤럭틱 스톰(Avengers in Galactic Storm)은 마블의 어벤저스와 우주 종족 크리의 전쟁을 소재로 삼은 일대일 대전 격투 게임입니다.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히어로 진영과 크리 측 캐릭터가 각각 넷씩 여덟 명, 그리고 시합 중에 불러낼 수 있는 조력자가 따로 여덟 명 준비되어 있습니다. 삼세판 중 두 판을 먼저 따내는 흔한 형식이지만, 조력자를 언제 쓰느냐가 승부를 크게 흔듭니다.
스트라이커가 만드는 리듬
이 게임의 핵심은 본체 캐릭터와 조력자를 따로 고른다는 데 있습니다. 고른 조력자는 시합 도중 정해진 횟수만큼 튀어나와 한두 번 공격을 넣고 사라집니다. 아이언맨이나 토르처럼 이름값 있는 캐릭터가 조력자 쪽에 배치되어 있어서, 정작 본진보다 조력자 명단이 더 화려하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실전에서 이 시스템은 두 가지로 쓰입니다. 하나는 상대가 다가오는 길목을 막는 견제입니다. 조력자가 나와 있는 짧은 시간 동안 상대는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고, 그 틈에 자리를 잡으면 유리해집니다. 다른 하나는 마무리입니다. 자기 공격이 맞은 직후에 겹쳐 넣으면 연속기가 길어지고, 그만큼 한 번의 성공이 가져가는 체력이 커집니다.
반대로 아껴 두다가 못 쓰고 판을 넘기는 것이 가장 아까운 경우입니다. 횟수가 남아 있어도 판이 끝나면 의미가 없으므로, 초보일수록 일단 적극적으로 던져 보면서 언제 나와서 언제 사라지는지 몸으로 익히는 편이 낫습니다.
그래픽과 기판 이야기
캐릭터와 배경 모두 미리 만들어 둔 3D 모델을 2D 그림으로 구워 넣는 방식으로 그려졌습니다. 같은 시기 킬러 인스팅트가 써서 화제가 됐던 그 기법입니다. 손으로 찍은 도트가 아니라 렌더링된 금속 질감이 화면을 채우니, 처음 보면 확실히 눈에 띕니다. 다만 이 방식은 몇 년만 지나도 촌스러워 보이기 쉬웠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습니다.
기판은 데이터 이스트가 후기에 밀던 자체 시스템이었습니다. 이 회사는 오랫동안 남들이 잘 안 하는 소재와 구조를 시도해 온 곳이었는데,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캡콤과 에스엔케이가 격투 게임 시장을 사실상 양분한 상태였습니다. 좋은 기술을 넣어도 옆자리에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와 킹 오브 파이터즈가 서 있으면 동전이 그쪽으로 갑니다.
데이터 이스트는 앞서도 어벤저스를 소재로 벨트스크롤 액션을 낸 적이 있었고, 이 작품이 그 마지막 마블 게임이자 회사의 마지막 격투 게임 축에 듭니다. 몇 해 뒤 회사는 결국 문을 닫습니다.
만만치 않은 균형 문제
솔직히 말하면 캐릭터 균형이 좋지 않습니다. 특정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를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구도가 뚜렷해서, 혼자서 컴퓨터를 상대로 끝까지 가려면 실력보다 누구를 골랐느냐가 더 크게 작용합니다. 어려워서 못 깨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해서 답답한 쪽에 가깝습니다.
처음 잡는다면 사거리가 길고 공중전이 편한 쪽을 고르는 것이 무난합니다. 대전 격투에서는 대체로 상대를 못 오게 막는 수단이 많은 캐릭터가 초보에게 유리합니다. 반대로 붙어서 잡기를 노려야 하는 캐릭터는 상대 행동을 읽는 눈이 생긴 다음에 잡는 것이 좋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의 자리
국내 오락실에 이 기판이 널리 깔리지는 않았습니다. 1995년 무렵 한국 오락실의 격투 게임 자리는 스트리트 파이터 계열과 킹 오브 파이터즈 계열이 거의 다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며칠 만에 기판이 교체되는 시절이었습니다. 마블 캐릭터를 쓰는 격투 게임이라 하면 한국에서는 조금 뒤에 나온 캡콤 쪽 작품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당시에 실물을 본 사람보다 나중에 이름만 전해 들은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지금 해 볼 만한 이유가 있다면 균형이나 완성도보다는, 몇 년 뒤 격투 게임의 표준이 되는 장치가 여기서 먼저 굴러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는 데 있습니다. 한 판만 잡아 봐도 그 구조가 얼마나 익숙한지 바로 알아차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