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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드롬

히포드롬 (Hippodrome Us) · 1989 · Data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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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파이터 2가 나오기 전에도 일대일로 붙는 격투 게임은 있었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가 아니었습니다. 버튼 두 개로 검을 휘두르고 뛰는 것이 전부고,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도마뱀 인간이나 전갈 인간 같은 괴물이며, 판과 판 사이에는 상점에 들러 장비를 사는 구간이 있습니다. 히포드롬은 그 과도기의 게임입니다.

히포드롬(Hippodrome)은 검투장을 무대로 한 일대일 대전 액션입니다. 일본에서는 파이팅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플레이어는 검을 든 전사가 되어 원형 경기장에서 차례차례 도전자를 꺾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챔피언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히포드롬 대전격투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9)

한 판의 흐름

조작은 대단히 단순합니다. 좌우로 움직이고, 한 버튼으로 뛰고, 다른 버튼으로 검을 휘두릅니다. 필살기 커맨드도 없고 가드 버튼도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 잡아도 30초면 조작을 다 익힙니다.

대신 거리 싸움이 전부입니다. 검이 닿는 거리와 상대의 공격이 닿는 거리가 다르고, 상대마다 이 거리가 크게 차이 납니다. 팔이 긴 상대에게 평소 하던 간격으로 들어가면 그대로 맞습니다. 그래서 새 상대를 만나면 먼저 몇 번 헛스윙을 하면서 서로의 사거리를 재는 것이 시작입니다.

승부는 짧습니다. 몇 대만 맞으면 체력이 사라지기 때문에, 길게 눈치를 보다가 한순간에 결판이 나는 식입니다. 이 점이 뒤에 나온 커맨드 격투 게임들과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콤보를 넣는 게임이 아니라 한 방을 안 맞는 게임입니다.

히포드롬 대전격투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9)

상대 고르기와 장비

이 게임의 특징 중 하나는 다음에 누구와 싸울지를 플레이어가 고른다는 것입니다. 여러 도전자가 제시되고, 그중 하나를 선택해 들어갑니다. 자신 있는 상대부터 처리할지, 까다로운 상대를 체력이 넉넉할 때 먼저 넘길지가 판단거리가 됩니다.

경기 사이에는 상점 구간이 있습니다. 번 돈으로 장비를 갖추면 체력이나 공격력, 사거리 같은 것이 달라집니다. 이 구조 덕분에 단순한 대전 반복이 아니라 조금씩 강해지는 느낌이 붙습니다. 다만 자원이 넉넉하지 않아, 무엇을 먼저 사느냐가 후반 생존을 좌우합니다.

상대는 사람 형태부터 거대한 괴수까지 다양합니다. 몸집이 큰 상대는 공격이 느린 대신 한 대가 아프고, 작고 빠른 상대는 접근을 허용하는 순간 계속 두들겨 맞습니다. 상대별로 대응이 완전히 달라야 하고, 그걸 익히는 과정이 이 게임의 본체입니다.

히포드롬 대전격투 게임 화면 3 - 오락실 (1989)

난이도가 튀는 지점

초반 상대는 패턴이 단순해서 사거리만 지키면 무난히 넘어갑니다. 문제는 중반부터입니다. 공격 후 경직이 짧은 상대가 나오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통하던 "때리고 물러나기"가 그대로 반격당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상대는 당시 오락실 게임답게 체력과 공격력이 노골적으로 높습니다. 정면 승부로는 거의 이길 수 없고, 상대의 공격 모션을 보고 빠지는 타이밍을 정확히 잡아야 합니다. 여기서 동전이 대량으로 소모되는 구조입니다.

요령을 하나 꼽자면 점프를 남발하지 않는 것입니다. 공중에 뜬 동안에는 방향을 바꿀 수 없어서, 뛰어들었다가 그대로 카운터를 맞는 일이 많습니다. 지상에서 거리를 유지하며 상대가 먼저 휘두르게 만드는 쪽이 안전합니다.

데이터 이스트라는 회사

데이터 이스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뭐든 만들어 보는 회사였습니다. 카르노프, 다크 실, 조 앤 맥, 그리고 뒤에 파이터스 히스토리까지, 유행이 보이면 자기 식으로 한 편 내놓는 식이었습니다. 히포드롬은 격투 게임이라는 장르가 아직 형태를 갖추기 전에 나온 시도라, 지금 보면 어색한 부분과 앞서간 부분이 섞여 있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이 기판이 흔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시기 벨트스크롤 액션이 훨씬 인기가 많아서, 일대일로 붙는 이런 게임은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다시 해 보면 낯선 감각인데, 스트리트 파이터 2 이전의 대전 게임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보여 주는 표본으로는 꽤 값이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