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트 포스
에이트 포스 (Eight Forces) · 1994 · Tec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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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를 고르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게임
세로 스크롤 슈팅에서 기체 선택 화면이 뜨는 순간, 이미 그 판의 절반은 정해집니다. 에이트 포스는 시작할 때 네 대의 전투기 가운데 하나를 고르게 하는데, 이게 단순한 색깔 바꾸기가 아니라 탄이 퍼지는 모양과 속도가 확연히 달라서 고르는 순간부터 다른 게임이 됩니다. 넓게 퍼지는 기체를 잡으면 잡몹 처리가 편해지는 대신 보스 앞에서 답답해지고, 앞으로 모아 쏘는 기체를 잡으면 보스는 빨리 녹는데 옆에서 들어오는 적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오락실에서 옆자리 사람이 어떤 기체를 고르는지 흘끔 보게 되는 게임이었습니다.
기체 선택이 있는 슈팅이 드물던 시절도 아니었지만, 이 게임은 선택의 무게가 유난히 큽니다. 한 번 고르면 판이 끝날 때까지 바꿀 수 없고, 자기 기체의 사거리와 폭을 몸으로 외워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에이트 포스(Eight Forces)는 화면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종스크롤 슈팅입니다. 8방향 레버로 기체를 움직이고 버튼 두 개로 각각 샷과 봄을 씁니다. 지상의 전차와 포대, 공중의 편대기를 쏘아 떨어뜨리며 전진하다가 구간 끝에서 큰 기체와 맞붙는, 이 장르의 정석적인 흐름을 그대로 따릅니다.
목표는 단순합니다. 맞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다만 이 게임은 화면을 채우는 적 물량과 지상 포대의 조준탄이 함께 오기 때문에, 쏘는 것만큼이나 피할 자리를 미리 확보하는 판단이 중요합니다. 봄은 위급할 때 화면을 정리하는 보험이지만 개수가 넉넉하지 않아, 언제 터뜨릴지가 곧 실력입니다.
파워업과 봄을 다루는 법
파워업 아이템을 먹으면 샷이 단계적으로 강해집니다. 슈팅 게임 초심자가 가장 자주 겪는 좌절이 바로 이 지점인데, 한 번 죽으면 그동안 쌓아 올린 화력이 초기치로 돌아가고, 약해진 화력으로는 방금 죽은 그 구간을 다시 넘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이른바 복구 난이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요령은 죽지 않는 것 자체보다, 죽었을 때 무엇을 먼저 할지 정해 두는 데 있습니다. 부활 직후에는 욕심내지 말고 화면 아래쪽에서 파워업만 회수하며 버티고, 화력이 어느 정도 돌아온 다음에 앞으로 나가는 편이 훨씬 안전합니다. 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겨 두고 죽는 것만큼 아까운 일이 없으니, 피할 길이 안 보이는 순간에는 망설이지 말고 쓰는 쪽이 결과적으로 오래 갑니다.
어디서 난이도가 튀는가
이런 종스크롤 슈팅에서 난이도가 갑자기 올라가는 구간은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첫째는 지상 포대가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조준탄을 쏘기 시작하는 중반부입니다. 이때부터는 적을 다 잡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화력을 한쪽에 몰아 길을 뚫은 뒤 그 틈으로 빠져나가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보스전입니다. 보스는 대개 정해진 패턴을 순서대로 돌리므로, 몇 번 죽더라도 패턴을 외우면 넘어갑니다. 다만 보스가 체력이 깎이면서 패턴을 바꾸는 구간에서 크게 당하기 쉬우니, 체력이 절반쯤 남았다 싶으면 미리 화면 중앙 아래쪽으로 자리를 옮겨 두는 편이 좋습니다.
셋째는 2인 플레이입니다. 둘이 붙으면 화력은 두 배가 되지만 화면에 피할 공간은 그대로여서, 서로의 자리를 뺏다가 같이 죽는 일이 흔합니다. 좌우로 영역을 나눠 두고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생존율이 눈에 띄게 올라갑니다.
테크모라는 이름과 90년대 중반의 슈팅
테크모는 스타포스와 아르고스의 전사, 닌자 용검전, 캡틴 츠바사 같은 굵직한 작품을 남긴 회사입니다. 특히 스타포스는 종스크롤 슈팅의 초기 교과서 가운데 하나였으니, 이 회사가 다시 종스크롤을 내놓았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연입니다.
다만 1994년은 슈팅 장르에게 만만한 해가 아니었습니다. 대형 대전 격투가 오락실의 좋은 자리를 다 가져가고, 슈팅은 점점 매니아의 장르로 밀려나던 시기입니다. 이 무렵의 종스크롤 슈팅들은 화려한 연출과 개성 있는 기체 선택으로 승부를 걸었는데, 에이트 포스도 그 흐름 위에 있는 작품입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한국 오락실에서 이 게임은 대작으로 대접받지는 못했습니다. 90년대 중반 국내 오락실은 대전 격투와 벨트스크롤이 중심이었고, 슈팅 기판은 구석 한 자리를 차지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슈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판 100원으로 확실한 긴장을 주는, 알맹이 있는 선택지였습니다.
이런 게임의 매력은 클리어가 아니라 갱신에 있습니다. 어제보다 한 스테이지 더 갔다, 봄을 하나 덜 쓰고 보스를 넘겼다 하는 식으로 자기 기록을 조금씩 밀어 올리는 재미입니다. 지금 브라우저에서 바로 켜서 해 보면, 그 시절 기판이 요구하던 집중력의 밀도가 어떤 것이었는지 몇 판 만에 다시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