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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의 결단

제독의 결단 (Teitoku no Ketsudan) · 1991 · Ko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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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에이 하면 삼국지와 노부나가의 야망을 먼저 떠올리지만, 그 두 간판 사이에서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킨 시리즈가 있습니다. 제독의 결단은 육상의 성과 영지 대신 바다와 함대를 다루는 작품으로, 코에이의 시뮬레이션 문법을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무대만 태평양으로 옮긴 게임입니다. 삼국지처럼 장수를 뽑고 내정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항공모함과 전함을 어디에 두고 언제 항공대를 띄울지를 정하는 게임입니다.

제독의 결단(Teitoku no Ketsudan)은 태평양 전쟁을 무대로 한 전략 시뮬레이션입니다. 한쪽 진영의 최고 지휘부가 되어 함대를 편성하고, 자원을 배분하고, 섬과 항구를 확보해 나가면서 전쟁 전체의 판을 굴려 가는 구조입니다.

제독의 결단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화면 1 - MSX (1991)

큰 지도와 작은 전투, 두 겹의 구조

게임은 두 층으로 나뉩니다. 위층은 태평양 전체가 그려진 전략 지도입니다. 여기서는 시간이 흐르고, 함대가 항구를 떠나 목표 해역으로 이동하며, 본국에서는 새 함선이 만들어지고 연료와 자원이 소모됩니다.

아래층은 함대가 서로 마주쳤을 때 벌어지는 전투 화면입니다. 여기서 정찰기를 띄워 적 함대를 찾아내고, 위치를 잡았으면 공격대를 편성해 보냅니다. 항공모함전에서는 먼저 찾아내고 먼저 때리는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이 게임의 핵심은 화력보다 정찰과 타이밍에 있습니다.

이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강한 함대를 가지고도 질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위치를 들키고 먼저 맞으면, 갑판 위에 무장을 실은 채 대기하던 항공대가 통째로 날아갑니다. 실제 역사에서 벌어진 일이 게임 규칙으로 그대로 들어와 있는 셈입니다.

제독의 결단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화면 2 - MSX (1991)

자원이라는 진짜 적

전투만큼 중요한 것이 보급입니다. 함대는 연료를 먹고, 새 배를 만들려면 자원이 필요하며, 조종사를 길러내는 데는 시간이 듭니다. 이 세 가지가 눈에 보이지 않게 계속 줄어들기 때문에, 이기고 있는데도 서서히 목이 졸리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전투 실력보다 운영에서 갈립니다. 멀리 나가 크게 이기는 것보다, 보급선을 지키고 자원 산지를 확보하는 쪽이 장기적으로 훨씬 큽니다. 화려한 대해전을 기대하고 시작했다가 스프레드시트를 붙잡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게임입니다.

조종사 숙련도 개념도 무겁게 작동합니다. 베테랑 조종사가 죽으면 그 자리는 신참으로 채워지고, 신참은 명중률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한 번의 무리한 출격이 몇 달치 전력을 갉아먹기 때문에, 무모하게 공격대를 소모하지 않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실패는 초반에 전선을 너무 넓게 벌리는 것입니다. 점령할 수 있는 섬이 많아 보여서 함대를 여기저기 흩뿌리면, 어느 쪽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연료만 태우게 됩니다. 지킬 수 있는 범위를 먼저 정하고 그 안을 굳히는 편이 낫습니다.

두 번째는 정찰을 아끼는 것입니다. 정찰기를 띄우는 데 드는 비용이 아까워 보이지만, 적을 못 찾은 채 마주치면 그 판은 대개 손해로 끝납니다. 전투에 들어가면 공격대를 보내기 전에 정찰부터 충분히 돌리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습니다.

세 번째는 전함에 대한 기대입니다. 큰 함선은 눈에 띄고 든든해 보이지만, 이 게임의 시대에는 항공기가 결정적입니다. 항공모함과 조종사를 아끼고 전함은 방어와 포격 지원에 쓰는 쪽이 실제 승률이 높습니다.

MSX2라는 그릇

이 시기 코에이는 자사 시뮬레이션을 여러 기종으로 동시에 내던 회사였습니다. PC-98 같은 상위 기종이 원본이고 MSX2판은 용량과 처리 속도를 맞춰 줄인 판본이지만, 그럼에도 시뮬레이션의 뼈대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한 턴을 넘길 때마다 기다림이 생기고, 대규모 전투에서는 계산 시간이 눈에 띄게 길어지는데, 그 기다림조차 당시에는 게임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국내에서는 코에이 시뮬레이션 자체가 워낙 인기가 높았던 터라, 삼국지를 먼저 접한 뒤 다른 작품을 찾아보다 이 게임에 닿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만 화면 대부분이 일본어 텍스트라 삼국지처럼 한자만으로 대충 감을 잡기 어려웠고, 소재도 태평양 전쟁이라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한 번 규칙을 익히고 나면 삼국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긴장감을 줍니다. 병력이 서로 부딪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못 본 채 넓은 바다에서 상대를 먼저 찾아내려 애쓰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