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
징기스칸 (Genghis Khan) · 1988 · Ko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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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리로 시작하는 정복
삼국지가 중국 한 나라 안의 싸움이라면, 이 게임의 무대는 몽골 초원에서 시작해 유럽까지 이어집니다. 처음 켜면 병사 몇 천에 도시 하나뿐인 초라한 부족장이지만, 몇 십 년을 버티고 나면 지도의 절반이 내 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그 과정을 직접 밟아 나가는 맛이 이 게임의 전부입니다.
한 턴이 일 년입니다. 그래서 결정 하나가 무겁습니다. 올해 군마를 살지 밭을 갈지 정하고 나면, 그 결과는 다음 해가 되어야 눈에 보입니다. 즉각적인 손맛이 없는 대신, 몇 년 뒤를 내다보고 둔 수가 맞아떨어질 때의 만족감이 큽니다.
어떤 게임인가
징기스칸(Genghis Khan)은 군주 한 명을 골라 영토를 넓혀 가는 역사 시뮬레이션입니다. 화면에는 지도와 명령 목록이 뜨고, 플레이어는 매년 자기 세력이 무엇을 할지 골라 지시합니다. 반사신경은 전혀 필요 없고, 대신 숫자를 읽고 순서를 정하는 일이 계속됩니다.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나라 안을 다지는 쪽과 밖으로 나가는 쪽입니다. 안쪽은 개간으로 식량을 늘리고, 상인에게서 군마와 무기를 사들이고, 인재를 등용해 부하 장수를 늘리는 일입니다. 밖으로는 이웃 세력에 사신을 보내 동맹을 맺거나, 군대를 편성해 쳐들어갑니다.
전투는 별도의 전장 화면에서 벌어집니다. 부대를 칸 위에 늘어놓고 한 부대씩 움직여 적을 치는 방식이라, 지형과 부대 배치가 승패를 크게 가릅니다. 병력이 많다고 무조건 이기지 않는 것이 이 시리즈의 오랜 특징입니다.
몽골에서 시작하는 이유
초원 시나리오에서는 테무진을 비롯한 몇몇 부족장 중 하나를 골라 몽골 통일을 노립니다. 무대가 좁아 세력 수가 적고, 규칙을 익히기에 좋습니다. 통일을 이루면 훨씬 넓은 세계 무대가 열립니다.
세계 시나리오로 넘어가면 상대의 성격이 확 달라집니다. 대륙 반대편의 나라들은 병력 규모도, 자원도 초원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는 한 번에 전선을 여러 개 열면 반드시 무너지므로, 어느 쪽 국경을 잠시 잠재우고 어느 쪽을 밀어붙일지 골라야 합니다.
외교가 실질적인 무기가 되는 것도 이 대목입니다. 동맹을 맺어 등 뒤를 안전하게 만들어 놓고 한쪽에 병력을 몰아넣는 것이, 사방으로 조금씩 진격하는 것보다 훨씬 빠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실패는 초반부터 전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병사를 뽑으려면 식량이 필요하고, 식량은 개간을 몇 년 해야 늘어납니다. 기반 없이 군대를 굴리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병력이 알아서 줄어듭니다. 처음 서너 해는 밭과 상업에만 쏟아붓는 편이 결과적으로 빠릅니다.
장수 관리도 초보가 놓치는 부분입니다. 능력 있는 부하가 없으면 명령을 내려도 성과가 시원치 않고, 홀대한 장수는 충성도가 떨어져 결국 떠납니다. 전투에 내보낼 사람과 내정을 맡길 사람을 나눠 두고, 상을 주는 데 인색하게 굴지 않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후계 문제입니다. 군주에게도 수명이 있어서, 대를 이을 자식을 두지 않으면 애써 키운 세력이 한 번에 무너집니다. 국력이 어느 정도 오르면 후사를 챙기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코에이 시뮬레이션의 자리
같은 회사의 삼국지나 노부나가의 야망을 해 본 사람이라면 화면 구성과 명령 체계가 낯익을 겁니다. 다만 이 작품은 무대가 유라시아 전체로 넓어지면서 이동 거리와 보급 개념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옆 나라를 치는 것과 대륙을 가로질러 치는 것의 무게가 다릅니다.
국내에서는 잡지에 실린 공략을 옆에 두고 한 턴씩 따라가며 배운 사람이 많았습니다. 한 판이 길어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저장해 둔 파일을 형제끼리 두고 다투기도 했습니다. 지금 다시 켜도 몇 년치 턴만 넘기면 그때의 몰입이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