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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논 포더 슈퍼패미컴판

캐논 포더 (Cannon Fodder Europe) · 1994 · Virgin Intera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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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언덕에 십자가가 하나 늘어납니다

이 게임의 미션 사이 화면에는 초록 언덕이 하나 있습니다. 그 위로 무덤 십자가가 줄지어 서 있고, 아래에는 다음 임무에 지원하려고 줄 서 있는 신병들이 보입니다. 내 병사가 죽을 때마다 십자가가 하나씩 늘어납니다. 한참 진행하고 나서 언덕이 십자가로 새까맣게 뒤덮인 걸 보면, 경쾌한 배경음악과 귀여운 그래픽 뒤에 뭐가 깔려 있는지 뒤늦게 알게 됩니다.

발매 당시 영국에서는 이 반전(反戰) 뉘앙스와 양귀비꽃을 쓴 광고 때문에 참전용사 단체와 언론이 크게 반발하는 소동까지 있었습니다. 그만큼 이 게임은 단순한 밀리터리 액션이 아니라, 병사 목숨을 소모품으로 다루는 전쟁의 얼굴을 웃으면서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캐논 포더 슈퍼패미컴판 슈팅 게임 화면 1 - 슈퍼 패미컴 (1994)

어떤 게임인가

캐논 포더(Cannon Fodder)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한 줌의 병사를 이끌고 목표를 달성하는 액션 전략 게임입니다. 원래 아미가에서 나와 큰 인기를 끌었고, 이 슈퍼패미컴판은 그 이식작입니다.

조작은 아주 단순합니다. 커서로 이동할 지점을 찍으면 소대가 그리로 달려가고, 사격 버튼을 누르면 커서 방향으로 총을 쏩니다. 수류탄과 로켓은 수량이 정해져 있어 아껴 써야 합니다. 병사 수는 몇 명뿐이고 총 한 발이면 죽기 때문에, 실제로는 액션이라기보다 위치를 잡고 각을 재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캐논 포더 슈퍼패미컴판 슈팅 게임 화면 2 - 슈퍼 패미컴 (1994)

소대를 쪼개는 법

이 게임의 핵심 기술은 소대 분리입니다. 병사들을 두세 갈래로 나눠 한쪽은 안전한 곳에 세워 두고 한 명만 앞으로 보내 정찰하는 식으로 움직이면 손실이 확 줍니다. 반대로 다섯 명을 뭉쳐 몰고 다니다 기관총 진지 하나에 전멸당하는 것이 초보의 전형적인 실수입니다.

건물과 텐트는 수류탄으로, 차량과 포탑은 로켓으로 부수는 것이 원칙입니다. 미션 중에는 지프나 헬리콥터, 탱크를 노획해 타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있는데, 탈것을 잡는 순간 난이도가 급격히 내려가므로 어디에 탈것이 있는지 아는 것이 곧 공략이 됩니다.

계급이 붙는 병사들

살아남은 병사는 다음 임무로 계급을 달고 따라옵니다. 이름이 붙고 계급이 올라간 고참을 잃으면 실제로 아깝다는 감정이 생기는데, 이게 이 게임이 노린 정서입니다. 신병은 언덕 아래에 얼마든지 줄을 서 있으니 게임 규칙상 손해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아까워집니다.

지형은 정글, 설원, 사막, 얼음 동굴 등으로 넘어가며 눈밭에서는 발자국이 남고 정글에서는 수풀에 적이 숨습니다. 스테이지가 뒤로 갈수록 임무 개수가 늘고 지도도 넓어져, 후반에는 미션 하나 클리어에 꽤 긴 집중이 필요합니다.

지금 다시 해 볼 때

마우스로 하던 원작에 비하면 패드 조작은 다소 답답한 편입니다. 대신 규칙 자체가 워낙 단순해 조금만 익히면 금방 손에 붙습니다. 한 판이 짧아 짬을 내 하기 좋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는 부담이 적습니다.

밝은 색감과 흥얼거리게 되는 주제가, 그리고 그 아래 깔린 서늘한 농담이 함께 있는 보기 드문 게임입니다. 병사 한 명을 아끼기 시작하는 순간이 이 게임을 제대로 시작한 순간입니다.